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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나라 일으키는 兼聽則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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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26 20:50:58 수정 : 2015-01-27 1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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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疏通). 막힌 곳을 뚫어 잘 통하게 한다는 뜻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정치를 관통하는 화두다. ‘군주는 배요 백성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 정관정요, 순자에 나오는 이 말도 소통에 닿는다. 백성의 마음을 알아 다스림의 근본으로 삼으라는 뜻이니, 밑바탕에는 소통이 자리한다. 그런 까닭에 위민(爲民)은 소통에서 시작된다.

소통, 말은 쉽다. 하지만 쉬운 일이던가. 작은 조직에서도 말이 통하지 않아 다투는 판에 나랏일을 두고 소통하기란 쉽지 않다. 나만 소통하고자 해 될 일인가. 상대가 마음의 문을 닫아 걸면 나는 불통의 화신이 되고 만다.

‘불통 낙인’, 한국 정치의 고질이다. 칼자루를 쥔 쪽과 칼을 빼앗고자 하는 쪽이 평행선을 내달리니 소통은 언감생심이었다. 대통령이, 집권세력이 성공하기를 바란 야당이 있었던가. 불통 딱지를 붙이고 손가락질하기 일쑤였다. 말솜씨가 뛰어났던 노무현 대통령. 그에게 퍼부은 말이 무엇인가. “제발 이제 고만 말하라.” 그 많은 말이 모두 허언이었을까. 달변이었던 이명박 대통령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불통의 딱지가 붙었다. 무슨 말을 해도 손가락질만 한다. 이전의 대통령이라고 달랐을까. 똑같다. 소설가 출신인 한 의원은 표현력이 너무 뛰어났던지 대통령을 향해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박아야 한다”며 말 같지 않은 말을 했다. “못해먹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겠는가.

불통의 낙인은 묵형(墨刑)과도 같다. 원인이 어느 쪽에 있든, 불통 고깔이 씌워지면 모든 것은 작동을 멈춘다. 반대쪽 세력은 ‘불통 이데올로기’에 의지해 생채기를 후벼 판다. 상처받은 대통령이 지지를 잃으니 나라 대사는 산으로 간다. 의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말만 요란하다. 나라가 풍비박산한 1997년에도 그랬다. 지금도 비슷하다. 경제법안 하나 제대로 논의한 적이 있던가. 민주주의 정치? 궤도를 벗어난 ‘비뚤어진 정치’ 속에 경제도, 민생도 벼랑으로 내몰렸다. 저성장과 고달픈 서민의 삶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대통령 국정 지지도 30%. 참담하다. 원인은 청와대 쪽에 있다. 불통의 낙인이 또 어른거린다. 새 국무총리를 뽑고, 청와대 조직을 손질하고, 특보단도 만들었다. 지지도는 다시 오를까.

분명한 것은 있다. 박수를 끌어내는 일은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본말을 생각하면 답은 보인다. 본이 무엇인가. 국민의 마음이다. 그 마음은 무엇으로 읽어야 하는가. 역시 소통이다.

겸청즉명(兼聽則明). 겸허히 많은 말을 들어 판단을 밝게 한다는 뜻이다. 이 말도 당 태종 정관의 시대에 나온 말이다.

말은 어떻게 들어야 하나. 한두 사람의 말에 의존하면 재앙을 부르게 된다. 그런 사례는 수없이 많다. 독대(獨對) 좋아한 대통령들, 언변이 아무리 뛰어나도 불통 딱지가 붙었다. 왜 그런가. 독대가 독(毒)이 된 탓이다. 무슨 말을 할까. 십중팔구 영달을 꾀하는 교언(巧言)을 충절로 포장하고, 사술을 늘어놓을 터다.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기 힘든 말은 ‘밝은 말’이기 힘들다. 독대하며 얻는 것은 무엇일까. ‘실세’라는 이름이다. 그 이름 하나로 팥고물을 주워 담으니 또 다른 파행이 쌓인다. 고금을 막론하고 ‘문고리’가, ‘실세’가 문제된 것은 이 때문이다.

강호원 논설실장
한 정치인은 이런 말을 했다. “여성 분이라 아무 때나 독대하기 힘드니 어려움이 있다.” 틀린 말이다.

겸청즉명. 일마다 장차관·참모·전문가를 삼삼오오 모아, 뭇 사람을 또 삼삼오오 모아 그들의 말을 겸허하게 들으면 밝은 길이 보이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이 하는 말은 크게 그르지 않다. 말솜씨 없는 대통령, 고집 있는 대통령, 하지만 뜻은 곧은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그렇게 말한다. 말솜씨가 단점인가, 고집이 단점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한번 뒤집어 생각해보자. 달변이 아니니 들을 수 있고, 고집이 있으니 곧은 뜻을 실천할 수 있지 않겠는가.

1970년 12월10일 박정희 대통령도 특보제도를 만들었다. 그도 말솜씨가 없었다. 특보들을 불러 차와 술을 마시며 무뚝뚝한 말투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묻고 들었다고 한다. 부처 과장까지 불러 물었다. 바로 그 대통령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나라 안팎의 위기는 시시각각 밀려든다. 많은 국민은 무엇을 바랄까. 난파를 바랄까. 선장이 풍랑을 뚫는 지혜로 배를 항진시켜주기를 바랄 터다. 많은 사람의 말을 들어 지혜를 모으는데 어찌 지지율이 떨어질까.

강호원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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