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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공식'이 깨졌다] GDP는 삶의 질을 말해주지 않는다

입력 : 2015-01-27 18:54:50 수정 : 2015-01-28 09: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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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소득 2870만원 중 가계로 가는 돈은 1609만원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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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듯 국민행복도 국내총생산(GDP) 순이 아니다. GDP는 경제성장의 총량일 뿐 성장의 질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소득 분배의 형평성이나 복지 수준 같은 삶의 질은 GDP에 반영되지 않는다. 성장 과실의 분배 통로가 막혀 있다면 GDP는 국민 대다수가 체감할 수 없는 허수에 불과하다. GDP 증가율, 즉 경제성장률이 높아진다고 해서 곧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국민행복시대’가 열리는 게 아닌 것이다.

GDP 등 총량지표가 국민행복을 결정지었다면 지금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는 행복해야 한다. 경제성장률, 국민소득 모두 양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3%,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13년 2만6205달러(한국은행 통계)를 기록했다. 과거 고성장 시대를 떠올리면 3%대 성장률은 낮은 것이지만 작금 세계적 저성장 흐름에서 보면 양호한 편에 속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3%대 저성장을 걱정하는 국내 경제학자에게 “그 정도면 훌륭한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는 일화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양호한 총량지표가 국민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지표가 조금 더 올라간다고 해서 크게 개선되리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한민국엔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이 이를 말해준다. 이들 지표가 훨씬 좋지 않은 나라 중 행복지수가 더 높은 나라가 적잖다. GDP와 GNI는 점점 많은 국민이 체감할 수 없는 수치가 돼가고 있다.

◆높은 소득, 낮은 행복지수


세계은행(WB)이 집계한 2013년 1인당 GNI를 보면 한국 2만5920달러(환율적용 차이로 한은 통계와 약간 차이가 있음), 칠레 1만5230달러, 브라질 1만1690달러, 멕시코 9940달러다. 국민소득으로 보면 한국이 월등하게 앞서는 1위다. 그러나 행복지수로 보면 이들 4개국의 국민소득 순위가 정확하게 뒤집어져 한국은 꼴찌로 떨어지고 멕시코가 1위로 올라선다. OECD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중 삶의 만족도(Life Satisfaction) 지수를 보면 한국은 6.0으로 36개국 중 25위다. 칠레는 6.6으로 23위, 브라질은 7.2로 13위이며 멕시코는 7.4로 10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국민소득이 절대적으로 많은 경우 삶의 만족도가 높을 가능성은 크다. 삶의 만족도 지수가 7.8로 1위인 스위스는 1인당 국민총소득이 8만6600달러, 2위인 노르웨이는 10만2610달러로 한국의 4배 안팎에 달한다. 그러나 이 역시 결정적 조건일 수 없다. 인도와 중국 티베트자치구 사이에 있는 인구 75만여명의 소국, 부탄은 100명 중 97명이 “나는 행복하다”고 답할 만큼 행복지수가 높다.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2500달러 정도로 한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부탄은 1972년부터 GDP 대신 ‘국민행복지수(GNH:Gross National Happiness)를 국가 발전의 잣대로 삼고 있다. 이를 관장하는 정부 명칭도 ‘국민총행복위원회’인데 우리로 치면 장관급인 해당 위원장은 늘 언론 인터뷰에서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의 조화를 중시한다”고 말한다.

총량지표와 행복지수의 괴리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분배의 불균형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으면서 총량지표의 체감도가 떨어지고 소외감과 박탈감이 커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13년 1인당 GNI가 2869만5000원이라고 하지만 이 중 가계가 온전하게 챙기는 액수는 1608만6000원으로 56%에 불과하다. 국민 개개인에게 의미가 있고 실감하는 수치는 2869만원이 아니라 1608만원인 것이다. 가계가 챙기는 과실의 비율이 OECD 평균(62.6%)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다. 선진국의 가계 몫 비중을 보면 미국이 74.2%, 독일 66.1%, 일본 64.2%이다. 한국은 이 비율이 1980년 70.7%→1990년 66.7%→2000년 62.9%→2007년 57.6% 식으로 줄곧 떨어지는 흐름이었다.

◆“숫자를 버려라”

경제적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로 GDP를 대체할 새로운 지표가 딱히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전문가들은 대체로 GDP나 GNI 같은 총량지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그 역할에 대해서도 불가피성을 인정했다. 문제는 정부가 총량지표에 너무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성장률만 올리면 다 되는 것처럼 국민을 오인케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연장선에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돈 풀어 양적 성장을 하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는 충고가 잇따랐다.

이용섭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우리 경제는 저성장과 양극화라는 두 가지 큰 문제를 안고 있는데 이젠 금리를 내려 돈을 풀어도 성장이 안 된다”며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전 의원은 “성장률 숫자부터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분배 관련 지표를 국정의 간판 목표로 함께 걸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성장률 목표가 아니라 ‘노동소득 분배율 5%포인트 제고’ 식의 질 좋은 성장을 위한 목표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정부 정책에서부터 총량 지표뿐 아니라 지니계수, 노동소득 분배율 등 분배 지표들에 비중을 두고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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