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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정치인은 회고록을 남기는 걸까. 내로라하는 정치인 치고 회고록 한 권 없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모두 자신의 행적을 책에 담았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9·11테러의 긴박했던 순간을 책에 실었다. 처칠 전 영국 총리는 회고록 한 권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이만 한 장사가 따로 없을 성싶다.

요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출간을 앞두고 정치권이 떠들썩하다. 책에 실린 일부 내용이 흘러나오자 야당이 발끈한다. 4대강 사업과 자원 외교의 기술을 놓고는 “변명으로 일관한 회고록”이란 거친 언어가 오간다.

통상 회고록에는 자화자찬이 양념처럼 곁들여지게 마련이다. 자신의 치적과 이름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의 발로다. 하지만 양념이 넘치면 음식이 제 맛을 내기 어려운 법! 전기 작가 스테판 츠바이크는 “회고록에는 이름이 아니라 인격이 담겨야 한다”고 했다. 과장보다는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진정한’을 뜻하는 영어 authentic은 ‘자기 자신’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아우토스(autos)와 ‘되다’라는 의미의 헨테스(hentes)에서 나왔다. 진정은 자기 자신이 되는 일이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진정성이 결여됐다면 결국 자기 자신이 없는 격이다. 자신이 빠진 책은 회고록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회고록은 반드시 재벌이나 정치인의 전유물은 아니다. 돈과 명성이 삶의 성공을 가름하는 유일한 잣대로 볼 수 없는 까닭이다. 철학자 에머슨은 성공의 의미를 명쾌하게 정의한다.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떠난다면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각자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다. 인생이란 무대에서 자기 배역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공한 사람이다. 당연히 삶의 회고록을 쓸 자격이 있다. 굳이 책이란 기록물에 연연할 필요도 없다. 묵묵히 걸어온 인생길이 당신의 진정한 회고록이 아니던가. 대지에 남긴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살아 있는 진짜 회고록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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