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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대입 인성평가, 美 따라하다간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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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2-01 22:45:06 수정 : 2015-02-01 22: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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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역사 美 입사제, 한국 적용했다 역풍
교육풍토 등 볼 때 또다른 사교육 우려
제도는 그 사회 산물, 실정 맞게 도입해야
교육부가 최근 대통령 업무 보고를 통해 대학 입시에 ‘인성평가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대와 사범대에 이 제도를 우선 적용하고, 내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하는 대학에는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게 교육부의 계획이다. 늘 그렇듯이 대입 제도의 변화가 있으면 사교육 시장이 출렁인다. 인성평가제가 새로운 입시 전형 중의 하나가 되고, 이 관문을 뚫으려면 역시 공교육보다 사교육이 효과적이라고 학부모가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인성평가제는 미국 등 외국의 사례를 볼 때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임에 틀림없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知), 정(情), 의(意)가 조화를 이룬 전인(全人) 교육을 지향하고 있고, 대학이 그런 인재로 자랄 기본 소양을 갖췄는지 심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인천 어린이집 핵 펀치 사건 등 인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속출하고 있어 인성평가제 도입은 시의적절한 정책 변화일 수 있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그러나 아무리 취지와 제도가 좋아도 부작용이 너무 크면 도입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 학부모의 과잉 교육열로 좋은 제도가 한순간에 나쁜 제도로 둔갑하기 일쑤이다. 입학사정관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입시 컨설팅업자가 학생의 자기소개서를 대필하는 지경에 이른 상황에서 입학사정관제는 입시 혼란을 가중시키는 주범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입학사정관제는 전임 이명박정부가 야심 차게 도입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전에서 이 제도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지금은 ‘학생부종합전형’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있다.

인성평가제나 입학사정관제는 모두 미국 대학이 80여년 이상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하버드대는 1923년부터 시험 성적만으로 학생을 뽑지 않고,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성적뿐 아니라 잠재력, 특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학생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입학사정관제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인성평가이다. 미국 대학에 입학 원서를 낼 때 제출하는 에세이가 바로 인성평가 수단이다.

하버드대 등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 입시에서 우리의 수능 시험에 해당되는 SAT 만점자가 수없이 낙방하고 있다. 미국 대학 당국은 왜 고득점자를 탈락시켰는지 절대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성적 이외에 특출한 점이 없거나 인성을 의심받았다면 명문대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을 뿐이다.

미국의 대학 입시제도가 한국처럼 조변석개는 아니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고, 이 같은 변화의 타당성 여부를 놓고 미국 교육계 안팎에서 거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입시 제도는 큰 방향이나 흐름을 보면 단순한 학과 성적보다 인성, 특기, 잠재력, 사회성, 리더십 등 종합적인 능력을 중시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미국의 약 3000개 4년제 종합대학 중에서 시험 성적 제출을 의무화하지 않는 대학이 850개가 넘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이 중에서 특히 명문 리버럴 아츠 대학인 보드윈대학과 웨이크 포리스트대학 등 100여개 대학은 수험생의 SAT 점수를 아예 받지 않는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드폴(DePaul) 대학 등은 수험생의 인성평가를 위해 짧은 에세이를 여러 개 제출하게 한다. 드폴 대학은 이 에세이를 통해 인내심, 융통성, 훈육 여부 등을 평가하고 있다. 미시간 주립대는 올해 제 1차 심사에서 합격 유보 판정을 받은 2000여 명에게 온라인으로 100개 문항의 ‘인성’ 테스트를 받도록 했다.

한국 교육부가 미국을 본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했다가 거센 역풍을 맞았듯이 미국에서 유행하는 인성평가제를 그대로 답습하면 또 한번 ‘필패’의 쓴잔을 마실 가능성이 크다. 제도는 그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사회의 현실에 맞게 변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부작용을 두려워한 나머지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것도 옳은 선택일 수 없다. 인성평가제는 방향이 맞다면 끝없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화 방법을 찾으면서 점진적으로 시행하는 게 정답일 수 있다. 이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교육시장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원천봉쇄하는 일이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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