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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대로…대학출판 교재 '표지만 개정판'

입력 : 2015-02-01 20:32:54 수정 : 2015-02-02 01: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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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흐름 뒤처진 내용 수두룩
‘고정수요’에 기댄 대학출판부
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23)씨는 지난해 2학기 ‘사회과학연구입문’(이하 사과연)이라는 수업을 듣기 위해 대학 출판부에서 만든 교재를 사서 보곤 실소를 참을 수 없었다. 책은 2000년대 중반에 최신 흐름으로 떠오른 ‘웹 2.0’을 아직도 ‘새로운 흐름’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현재는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웹 3.0이 새 흐름이다.

이씨는 “몇 년 전 같은 수업을 수강한 선배에게 책을 빌리려다 개정판으로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교수 말을 듣고 책을 샀다”며 “출판부에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책값만 올려 받아 챙기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1일 대학가에 따르면 출판업계가 장기불황에 빠지며 출판사들이 치열하게 생존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반면 대학 출판부는 ‘표지만 개정판’을 찍어내며 수익을 올려 학생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다. 여러 번 개정판이 나왔지만 내용은 몇 년째 똑같다. 교수들은 이런 책을 강의에 활용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대학 출판부가 학생이라는 ‘고정 수요’에 의존하는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씨가 산 교재는 ‘사회과학으로의 초대’다. 대학 교수들이 공저한 이 책은 2007년 초판 발행 이후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개정해서 개정 2판까지 나와 있다.

건국대 출판부에서 2009년 개정판을 낸 ‘오늘의 여성학’ 내용을 발췌한 것으로, 2000∼2002년 통계를 그대로 쓰고 있다(맨위 사진). 성균관대 출판부에서 펴낸 ‘사회과학으로의 초대’ 미디어 이론 부분을 발췌한 것으로 2007년 1판(가운데)과 2013년 개정 2판 내용이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문제는 두 차례 개정을 거치면서도 최신 경향을 반영하지 않아 수년째 학생들에게 ‘오래된 사회과학’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는 2004년 등장한 웹 2.0뿐 아니라, 2007년부터 회자한 인터넷 프로토콜(IP)TV를 최신 기술로 소개하고,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가 최근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등 시대 흐름에 뒤처진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책값은 개정 때마다 2000원씩 올라 현재 1만6000원이다. 2010년부터 이 교재를 사용한 14개의 인터넷 수업이 개설됐고, 3000여명이 시대에 뒤떨어진 수업을 받았다.

이 대학 출판부의 한 관계자는 “애초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기획 단계에서 갱신이 됐어야 했는데 전체적인 설계에서 미비한 점이 있었다”며 “현재 비문은 지속적으로 잡고 있고 미진한 내용도 주임교수가 새롭게 연구한 부분을 전달받아 다음 수정본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대학 출판부도 사정은 비슷하다. 건국대 출판부에서 펴낸 ‘오늘의 여성학’이라는 책은 1999년 출간 이후 2009년까지 5번 개정을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성의 경제활동 현황’은 여전히 2002년 자료를 쓰고 있다. 여성의 직업별 취업자 비율 등을 나타낸 표는 2000년 통계청 자료를 인용했다. 현재 이 책은 수업에 쓰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출판돼 서점에서 팔리고 있다.

경제활동 현황이나 취업자 비율은 통계청이 매년 홈페이지에 발표해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운 자료이기 때문에 개정 작업을 게을리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건국대 출판부 측은 “보통 쇄가 바뀔 때 수정사항이 반영돼야 하는데 저자가 바쁘다든지 여의치 않을 때 편집자가 임의로 수정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정판을 내자는 교수의 의견을 묵살한 대학 출판부도 있다. 지난해 가을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최모(26)씨는 “저자인 교수가 사회통계 관련 수업 교재의 개정판을 내자고 제안했는데 대학 출판부가 ‘찍어놓은 교재가 아직 안 팔려서 새로 찍을 수 없다’고 해 개정판을 내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기획홍보부의 김신영 과장은 “대학 출판부에서 나가는 책은 고정 수요자가 있기 때문에 일반 출판사보다 경쟁이 덜하다”며 “교재 문제점을 제기했는데 수용하지 않았다면 대학 출판부가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이지수 기자 v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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