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의로운 도둑’ 액션과 드라마 사이 애매한 줄타기

입력 : 2015-02-12 21:41:38 수정 : 2015-02-12 21:41:3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뮤지컬 ‘로빈훗’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는 지극히 어렵다. ‘취향’이라는 미묘한 변수가 개입되는 예술작품은 더욱 그렇다. 이런 이유로 대중예술은 특정 층을 겨냥한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중세 영국의 의적 로빈훗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그동안 주로 아동이나 젊은 층을 겨냥한 작품이 많았다. 악독한 지배층을 민초들이 단죄하는 권선징악적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시원한 액션 활극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뮤지컬로 올해 국내에서 초연되고 있는 ‘로빈훗’(사진)은 이 액션 활극을 기반으로 사랑이야기와 음모, 배신 등의 권력 암투를 가미했다. 젊은 층뿐 아니라 여성과 중장년층까지 폭넓은 관객을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읽히는 부분이다. 확고한 타깃층을 노리는 대신 다수의 대중을 사로잡기 위한 미묘한 줄타기를 시작한 것이다.

리처드왕을 따라 십자군전쟁에 참전한 기사 로빈 록슬리가 주인공이다. 권력에 눈먼 친구 길버트가 리처드왕을 배신하는 과정에서 로빈은 왕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연인이던 매리언도 로빈을 배신하고 길버트의 품에 안긴다. 도망자가 된 로빈. 셔우드 숲으로 도망치다 만난 의적 패거리에 합류하게 되고 의적 로빈훗으로 거듭난다. 때마침 궁성에서는 길버트와 리처드 왕의 동생 존이 왕세자 필립을 살해하려는 계획을 진행한다. 필립은 살해 위협을 피해 숲 속을 전전하다 로빈훗을 만나게 되고, 로빈훗 일당과 모험을 함께하면서 진정한 왕으로 변모한다.

작품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어왔고, 영화 등의 미디어를 통해서도 접해왔던 로빈훗의 이야기를 뼈대로 했다. 의적 로빈훗이 “뼈 빠지게 일해도 세금을 내느라 밥 한 끼 먹을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민초들을 대신해 탐관오리들을 단죄하고 새 세상을 여는 내용이 중심 축이다. 하지만 욕망을 위해 죽마고우를 배신하고 결국 타락의 길로 가는 길버트, 사랑을 버리고 안락한 삶을 선택한 매리언 등과 이어진 드라마가 가미되며 작품의 분위기는 기존에 알고 있던 로빈훗 이야기에서 많이 바뀐다. 비현실적이고 활기찼던 이야기가 한층 어둡고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 것이다. 

한편의 작품에 액션과 드라마를 모두 담으려 한 이런 시도는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 새로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극의 어두운 분위기 탓에 당초 기대했던 시원한 액션과 권선징악의 통쾌함은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배신과 권력 암투 등의 드라마를 제대로 구현한 것도 아니다. 의도한 갈등들이 극 속에서 빛나려면 인물의 심리 묘사 등이 더욱 치밀해야 하지만 작품은 춤과 노래, 액션까지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느라 드라마의 맛을 살리지 못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로빈훗’의 줄타기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범작을 낳는 결과로 이어졌다.

시대 상황을 풍자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보이는 대사도 아쉬운 부분이다. “정치를 아는 자에게 정치를 맡기고, 이치를 아는 자에게 법을 만들게 하고, 정직한 자에게 권력을 맡겨라” 등의 대사는 최근 국내 정치 현실과 맞아떨어져서 씁쓸한 웃음이 배어나오게는 하지만, 극 자체만으로 봤을 때는 스토리에 착 달라붙지 못하고 겉돈다.

작품의 아쉬움을 메워주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로빈훗 역을 맡은 베테랑 배우 유준상·이건명·엄기준과 매리언 역의 서지영·김아선 등은 안정된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잘 잡아준다. 필립 역을 맡은 박성환의 가창력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왕용범 연출의 작품이다. 3월29일까지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홀에서 공연된다. 6만∼13만원. (02) 764-7857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세계섹션>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