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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재의천기누설] 무던히도 달을 좋아하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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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2-23 21:06:53 수정 : 2015-02-23 21: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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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옛 노래 속의 달
달 없는 밤은 더욱 처절해
영화 ‘국제시장’의 관객이 1400만명을 돌파했단다. 마지막 부분에서 어린 손녀에게 노래를 시켰더니 흘러간 옛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를 부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영화를 보고 그 노래 가사를 다시 생각해봤다. 그동안 나는 내용을 전혀 실감하지 못한 채 이 노래를 들은 것 같다. 이는 물론 주인공 ‘덕수’가 나보다 반 세대 앞이기 때문이다. 사병으로 군에 근무했을 때 간부들이 월남 다녀온 얘기를 자랑 삼아 반복한 이유도 비로소 깨닫게 됐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민초들의 고단한 삶 속에서 영롱한 이슬처럼 맺힌 흘러간 옛 노래들은 한마디로 ‘민족의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중가요 가사들은 시나 소설처럼 문학으로 대접받지 못하지만 우리 정서를 오히려 더 잘 담아내고 있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달 밝은 밤 환구단에서 들은 ‘황성옛터’는 고종황제가 겪으신 고통을 말해줬다.

나는 어렸을 때 ‘강남달’이라는 노래를 참 좋아했다. “강남달이 밝아서 님이 놀던 곳, 구름 속에 그의 얼굴 가리워졌네. 물망초 핀 언덕에 외로이 서서, 물에 뜬 이 한 밤을 홀로 새울까…” 여기 ‘강남’은 ‘강남 스타일’의 그것이 아니다.

“전선야곡’은 우리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지금까지 예를 든 노래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달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참 무던히도 달을 좋아하는 민족이다. 달이 밝으면 달맞이를 가고 강강술래를 한다. 대한민국 남자들 로망 중의 하나가 달밤에 배 띄워놓고 친구들과 같이 술 먹는 것 아닌가.

어느 날 TV를 켜니 남북 이산가족이 헤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버스 창문 너머로 인사하고 있었다. “야, 우리 달을 보면서 서로를 생각하자.” 북한 가족의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헤어지는 절박한 상황에서 진심으로 한 말이 아니겠는가. 북한 사람들 역시 우리와 정서가 같은 동포인 것이다.

“아메리카 타국 땅에 차이나 거리, 란탄 등불 밤은 깊어 바람에 깜박깜박… 저 하늘 빌딩 위에 초생달도 노래해… 아아, 애달픈 차이나 거리….” 이것은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이라는 노래다. 배경이 미국이라고 달라지겠는가. ‘초생달’은 어김없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초생달’은 ‘초승달’의 속어로서 현재 표준말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음에 유의하자.

이처럼 달은 우리 마음을 꼬집고 달래주는 정겨운 존재다. 그런데 밤을 배경으로 한 흘러간 옛 노래 중에는 달이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달 없는 밤에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더욱 사무친다.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요만은,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어주나 휘파람 소리….” 이것은 ‘애수의 소야곡’이라는 노래다. 보는 바와 같이 달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애수’인가.

‘신라의 달밤’ 가사에는 달이 없지만 그래도 ‘반월성’은 나온다. “서라벌 옛 노래냐 북소리가 들려온다, 말고삐 매달리며 이별하던 반월성. 사랑도 두 목숨도 이 나라에 바치자, 맹세에 잠든 대궐 풍경 홀로 우는 밤. 궁녀들의 눈물이냐, 첨성대 별은….”

‘고향만리’라는 노래도 있다. “남쪽나라 십자성은 어머님 얼굴…” 이렇게 시작하는 이 노래 때문인지, 호주처럼 남반구에 있는 나라로 여행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남십자성을 찾는다고 한다. 옛날 월남에 파병된 부대 중에는 ‘십자성부대’도 있었다.

“반짝이는 별빛 아래 소곤소곤 소곤대던 그날 밤, 천년을 두고 변치 말자고 댕기 풀어 맹서한 님아. 사나이 목숨 걸고 바친 순정 모질게도 밟아 놓고, 그대는 지금 어데 단꿈을 꾸고 있나. 야속한 님아, 무너진 사랑탑아….” 이 노래의 제목은 ‘무너진 사랑탑’으로 내용이 처절하다. 하지만 2절을 보면 “달이 잠긴 은물결이 살랑살랑, 살랑대던 그날 밤…”역시 달이 등장한다.

비교적 최근 노래 중에서 달 없는 밤을 잘 그린 것으로 ‘송학사’를 꼽을 수 있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속 헤매냐. 밤벌레의 울음 계곡 별빛 곱게 내려앉나니, 그리운 맘 님에게로 어서 달려가 보세….” 내 애창곡이기도 하다.

‘별이 빛나는 밤에’도 빠지면 서러울 노래다. “…별이 빛나던 밤에 너와 내가 맹세하던 말, 사랑한다는 그 말은 별빛 따라 흘렀네. 머나먼 하늘 위에 별들이 빛나는 밤, 그리워요 사랑해요 유성처럼 사라져버린….”

이번 칼럼은 인기 TV 프로그램 ‘가요무대’의 해설이 된 느낌이다. 글을 마치면서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 우리말이 정말 아름답다는 사실이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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