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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진 찍어줘요”…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

입력 : 2015-02-26 21:39:15 수정 : 2015-02-26 21: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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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48〉 교복 입은 아이들 여행을 하다 보면 목적지가 있어서 가게 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지나가다 우연히 찾게 되는 곳도 있다. 뜻하지 않았던 곳으로 안내받기도 한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 딱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번 일이 그랬다. 다른 곳을 가고 있었고 그때 내가 그곳을 지나쳤다. 그곳이 학교 교문이었고, 그 시간이 종이 울리는 하교 시간이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몰려나왔다.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어서 대답해줬을 뿐이다. 순식간에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수업 시간에 만든 공작물을 나에게 자랑하기 바쁘다.

하교 시간에 만난 아이들은 신나게 떠들어댔다.
“나 좀 봐줘. 내가 만든 거야.” “나도 사진 찍어줘.”

교복을 입고 머리를 촘촘하게 땋아 묶은 아이들이 마냥 예뻐 보인다. 곱슬머리는 땋지 않으면 풍선처럼 부풀기 일쑤라 아침에 엄마가 꼭 땋아준단다. 몰려드는 아이들은 더 많은 아이들을 불렀다. 학창시절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교문 앞에 몰려드는 것은 대부분 잡상인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뽑기나 병아리를 파는 상인들 주위를 에워쌌다. 지금은 내가 잡상인이 된 듯하다. 뭐가 됐든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아이들이 고마울 뿐이다. 폭풍이 지나가듯 아이들과 보낸 시간이 흐르고, 학교 담벼락에 남은 아이들만 몇 명 있었다. 교복을 입지 않은 걸 보면 그들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동네 아이들이다. 담벼락에 난 창문으로 학교를 들여다보는 그들의 모습이 또 마음을 아프게 한다. 어디를 가나 ‘그림자’는 있기 마련이지만,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제발 없었으면 한다. ‘교육이 미래’라는 뻔한 말이 꼭 필요한 말이라는 걸 느낀다.

자기가 만든 공작물을 자랑하는 아이들이 귀엽다.
해외 자원봉사자들이 열 살이 채 안 된 아이들을 열악한 환경에서 가르치기도 한다. 바닥에 앉아 수업을 듣기도 하지만 아이들 눈은 또렷하다. 선생님 말씀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아이들 모습에서 배움에 대한 갈망이 느껴진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배움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왜’라는 물음을 갖게 한다. 교복을 입었든 입지 않았든, 교실 안에서 배우든 밖에서 배우든 상관없다. 지금 행복하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다. 도미니카공화국이 가난한 것은 10대 청소년들의 출산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 나라는 10대뿐만 아니라 전체 출산율이 높다. 그래서 아이들에 대한 정책이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하루였다. 학교 앞을 지나쳐 원래 가려고 했던 곳으로 향하려 했다. 그러나 발걸음이 무거워져 어디를 가려고 했는지 잊어버렸다. 그건 뭐 중요하지 않아 그냥 길을 서성이며 돌아다녔다. 카메라를 하나 메고 나왔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해가 쨍쨍하게 빛나던 날이었는데 이렇게 순식간에 비를 쏟아붓는 하늘이 그저 야속하기만 했다.

길에서 수업을 받는 아이들도 공부에 열심이다.
가게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얻어 카메라만 싸고, 잠시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다. 사람들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쓰고 다녔다. 머리에 비를 맞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곱슬머리라서 비를 맞으면 더 부풀어 감당이 되지 않는단다. 모자처럼 비닐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비를 맞고 다닌다. 더위에 비는 시원함이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내리치는 벼락은 나를 겁나게 한다. 벼락 빛이 보일 정도로 내리치는데, 그곳에 자동차가 있으면 경보음이 울려 온 동네가 떠나갈 듯 시끄럽다. 벼락보다 더 무서운 게 천둥 소리다. 대포처럼 어마어마한 소리를 낸다. 천둥이 칠 때마다 몸이 들썩일 정도로 깜짝 놀란다. 태풍이 몰아치는 여름이 왔단다. 그렇다고 더위가 가시는 건 전혀 아니다. 덥고 비까지 와서 습도가 최고로 올라가는 시기다. 호우성 비가 아니기 때문에 강우량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도로는 마치 홍수가 난 듯 온통 물난리다. 자동차 바퀴는 물에 완전히 잠겨 움직인다. 하수도 시설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배수가 안 돼서 비가 조금만 와도 길은 물에 잠긴다. 흙탕물이 도로를 채우고, 물이 차는 집도 많다.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담벼락에 난 창문을 통해 학교를 구경했다.
어느 날 밤에는 전쟁이 난 줄 알고 잠에서 깬 적도 있었다. 번개가 건물을 쳤는데, 그 소리가 천둥과 함께 엄청난 굉음을 냈다. 4층 건물에 살던 나는 해일이 오거나 물난리가 나면 어디로 가야 하나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자연재해가 무섭다는 걸 온몸으로 느낀 순간이다. 빨래를 베란다에 널어 놓으면 항상 비가 온다. 생각해보니, 내가 빨래를 한 날 비가 오는 게 아니라, 우기라서 비가 자주 오는 것뿐이었다.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치기도 했고, 눈부시도록 빛나는 태양이 있어도 수시로 고양이 오줌 같은 비가 내렸다. 

머리를 촘촘히 땋은 아이.
계절이 바뀌는 것을 전혀 알 수 없었던 도미니카공화국에도 날씨 변화가 생겼다. 태풍이 오는 여름이면 더 더워진다. 그리고 가을쯤에는 덥고, 겨울이 오면 또 덥다. 오로지 더운 계절과 그보다 더 더운 계절만 존재한다. 더 더운 계절이 오니, 이제는 이 나라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또 아쉬워진다. 여행하기 힘들 정도로 더워서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가고 싶은 데가 더 많아졌다. 새로운 곳을 가고 싶진 않았고, 좋아하던 장소들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인사를 해야 할 사람들이 있고, 정리도 해야 했다. 당장 떠나는 건 아니지만 그럴 마음을 가졌다는 의미는 다르다.

그러고 보니 도미니카공화국에 온 지 벌써 5개월이 넘었다. 중남미의 카리브해에 온 지는 아홉 달이 지났다. 1년을 생각하지 않고 떠난 여행에서는 1년을 훌쩍 넘기기도 하고, 1년을 생각하고 떠나 온 여행에서는 다 못 채울 수도 있다. 기간이 중요한 건 아니다. 여행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놔둬야 한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여행이 되어 있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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