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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철칼럼] 국격을 높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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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2-26 21:27:14 수정 : 2015-02-26 22: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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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재앙 극복하는 일본, 프랑스의 차분함… 우리하곤 너무 큰 차이
배울 건 배워야 선진국 가능할 것
한 조사가 있다. “빨간 신호에 왜 멈춰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응답자의 70%가 “경찰이 잡으니까”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25%는 “내가 다칠까봐”였다. 나머지 5%는 “나도 다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느 나라 국민일까? 미국이다. 법질서를 우선시하는 미국민의 의식을 엿보게 한다. 일본인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면? 아마 “나도 다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답변이 가장 많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경찰이 잡으니까”가 그 다음이고 “내가 다칠까봐”는 가장 적을 듯하다.

이런 생각은 최근 일본인 고토 겐지 참수 사건을 보면서 굳어졌다. ‘이슬람국가(IS)’에 살해된 고토 겐지의 78세 노모는 “걱정을 끼쳐 죄송하다”고 했다. 첫 번째 피해자 유카와 하루나의 아버지도 감정을 절제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들의 비보에 대한 첫 반응은 “폐를 끼쳐 죄송하다”였다. 피해자 가족들은 정부를 탓하는 대신 “인질 구출에 애쓴 정부에 감사한다”고 했다. 일본국민은 지도자 뒤에 줄을 섰다. 아베 총리가 테러에 잘 대응했는지 묻는 조사에 60% 이상이 긍정 평가했다.

백영철 논설위원
프랑스는 지난달 2차 대전 이후 최대 시련을 겪었다. 시사풍자 만화잡지 샤를리 에브도와 유대인 식품점 연쇄 테러로 17명이 희생됐다. 엄청난 비극을 당하면 온 사회가 침울해질 수밖에 없다. 남의 나라 일로 여기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눈앞에서 벌어졌으니 그 공포감을 무엇으로 잠재울 수 있을까. 그러나 파리는 차분했다. 동요와 불안감은 내재됐을 뿐 표면화하지 않았다. 테러 발생에도 프랑스 공·민영 TV 방송사들은 예능 프로그램을 그대로 내보냈다. 테러에 대해 규탄 목소리는 컸지만 마녀사냥식 여론몰이, 희생양 찾기는 없었다. 평정심을 잃지 않는 프랑스인들의 태도에 한국 교민과 유학생들이 특히 많이 놀랐다고 한다. 프랑스 국민 역시 지도자 중심으로 뭉쳤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율이 테러 이후 40% 가까이로 수직 상승했다. 테러참사 이전의 배에 가깝다.

프랑스인과 일본인의 차분함, 단합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프랑스의 경우 “수많은 혁명의 역사에서 전통을 쌓았기 때문”에 일상복원력이 남다르다는 평가가 있다. 일본은 “수백 년 동안 지속된 사무라이의 칼의 위협이 잠재의식 속에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위기 앞에 뭉치는 공동체 의식이 국민 모두에 DNA화했다는 것이다.

안보 사건이나 사회적 사건으로 국가가 분열의 위기에 처하면 외국의 경우 지도자 중심으로 뭉친다. 랠리효과(Rally effect)가 그것이다. 일본의 아베 총리,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른 것은 그 때문이다. 미국의 9·11 테러 때 부시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80%를 상회했다. 이들 나라는 위기를 맞으면 모두가 단합해서 극복한다. 정치가 앞서고 국민이 받치고 언론이 중심을 잡는다. 서로에겐 신뢰가 두텁다. 우리는 그런가?

세월호 참사 때 새누리당 정몽준 전 국회의원의 막내아들은 페이스북에 “대통령에 소리 지르고 욕하고 국무총리에게 물세례. 국민 정서 자체가 굉장히 미개”라는 글을 올렸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천안함 폭침 이후 공개 강연에서 “동물처럼 울부짖는 격한 반응을 보이고 이런 것을 언론에서 보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두 사람의 지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국민마다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다. 문화의 차이는 존재한다. 두 사람은 그걸 놓쳤다.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대형사건에 나라 전체가 속수무책으로 우울증 증세에 빠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천안함 폭침 때도 그랬고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다.

‘빨간불에 왜 서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할까. “내가 다칠까봐”라는 ‘자기중심적’ 답변이 가장 많다면 우리가 선진국민이 되는 길은 아직 멀다. 일본인과 프랑스인에게 배움을 청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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