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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조장된 '北 공포', 해외 방산업체 '호갱' 만들기

입력 : 2015-02-27 16:07:11 수정 : 2015-02-27 17: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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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35 전투기(자료사진)

#장면 1. 미국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은 24일 ‘2015년 미국 군사력 지수’ 보고서에서 한국과 북한의 군사력 현황을 비교 분석하면서 “한국이 북한에 비해 엄청난 열세”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현역 전투병은 63만9000명으로 119만명인 북한의 54%로 집계됐다. 예비군 병력도 한국은 320만명으로 770만명인 북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한국의 군사력이 북한을 앞서는 부분은 13개 항목 중 장갑차와 헬기 등 2개뿐”이라고 지적했다.

헤리티지재단의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T-34 전차 등 북한이 보유한 아주 오래된 무기체계를 모두 세어 비교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전투력 비교에 큰 의미가 없다”며 평가 절하 했다.

◆ ‘패닉 바이’ 유도하는 보고서들

위의 장면은 미국의 싱크탱크들이 발표하는 보고서가 어떤 의도로 작성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헤리티지재단의 미국 군사력 보고서에서 남북한 군사력 비교는 200페이지에 등장한다. 보고서는 각 무기체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비교 방식으로 북한의 낡은 무기까지 모두 계산해 ‘북한 군사력이 우세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1980~1990년대 국책연구기관에서 근무했던 전직 연구원은 “내가 젊었던 시절에도 잘 쓰지 않았던 원시적인 방법으로 군사력 분석을 했다”며 “헤리티지재단이면 명성이 높은 싱크탱크인데 왜 이런 식의 분석자료를 내놓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평도 포격 직후 서북도서에 긴급배치된 스파이크 미사일(자료사진)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쓰이는 말 중에 ‘패닉 바이’라는 단어가 있다. 패닉 바이는 불안감에 휩싸인 구단이 면밀한 검토 없이 선수들을 사재기하듯 영입하는 걸 말한다.

리그에서 강등 위기에 빠진 구단은 공포에 질려 마구잡이로 선수를 데려온다. 이 과정에서 돈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간다. 선수를 팔려는 팀이 덤터기를 씌우며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선수를 파는 팀은 막대한 이문을 남기며 콧노래를 부르지만 사는 팀은 선수를 사고도 구단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무기시장도 마찬가지다. 전쟁의 공포에 사로잡힌 나라는 몇 년에 걸쳐 면밀한 검토를 진행해 무기를 구입할 여유가 없다. 해외 방산업체들이 제시하는 카탈로그와 감언이설에 혹해 자국의 실정에 맞지 않는 무기를 엄청나게 비싼 값에 사들인다.

그렇게 도입된 무기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이 속출하면 이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바가지’를 쓴다.

문제는 세계 국가들을 전쟁의 공포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들이라는 점이다. 록히드마틴 등 방산업체의 연구비 지원을 받은 싱크탱크는 국방예산 증액, 군비 확장,  무기체계의 끊임없는 업그레이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낸다. 동북아에서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보고서는 ‘약방의 감초’만큼이나 흔하다. 그리고 이러한 보고서는 한국에서 확대 재생산된다.

◆ 괴물이 된 북한, 상대하려면 첨단무기 뿐?

이 과정에서 휴전선 이북에는 미국, 러시아 등 5대 군사강국과 맞먹는 새로운 무장집단이 탄생한다. 20만명의 특수부대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무인공격기, 생화학무기, 핵무기까지 보유한 ‘21세기의 스파르타’ 같은 집단이 그것이다.


시험발사되는 사드 미사일(자료사진)


위협이 부풀어오른 북한이 가볍게 움직이기만 해도 군 당국은 비상이 걸린다. 무인기가 내려오면 레이더를 구매해야 하고, 미사일이 날아오면 요격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때 합참과 방위사업청 등이 운용하는 국방중기계획 같은 무기도입 절차는 설 자리를 잃고 공포에 질린 ‘패닉 바이’만 남는다.

이렇게 애초 계획에 없던 사업이 끼어들면 해외 방산업체의 먹잇감이 된다. 제대로 조건을 따져보고 성능을 검토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업체들은 첨단 무기들의 성능을 적극 홍보하면서 필요성을 강조하고, 다급한 군 당국은 서둘러 계약을 체결한다. 연구에 몇 년이 걸리는 국산 무기 개발은 뒷전이 되고, 국내 방산업체들은 외국 무기의 창정비 업체로 전락한다.

결국 첨단 무기를 비싼 값에 도입하면서 국내 방산 기술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국제 호갱’으로 전락한다.

미국 싱크탱크의 보고서는 국제정치학적으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다만 겉으로 보이는 문구에만 집착한 나머지 그 이면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호갱’의 신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국이 미국에게 등을 떠밀리듯 무기 구매를 요구받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을까. 최근 논란을 빚는 사드 도입 등을 보면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것 같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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