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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중일전쟁'… 용은 어떻게 사무라이를 꺾었나

입력 : 2015-02-27 19:51:06 수정 : 2015-05-18 19:5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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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 걸고 맞붙은 진검승부 불구
어느 쪽에서도 제대로 평가 못 받아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에서 거행된 광복군 창설식 모습. 광복군은 이날 행사에 참석한 중국 정부 인사들과 외신 기자들에게 우리의 독립 의지를 강하게 보여줬다.
권성욱 지음/미지북스/3만3000원
중일전쟁/권성욱 지음/미지북스/3만3000원


격동의 20세기 중반 한반도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들 가운데 중일전쟁은 잊혀진 전쟁이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이나 1940년대 태평양전쟁에 이은 6·25전쟁 등은 우리 역사에 깊이 각인돼 있다. 하지만 중일전쟁은 중국과 일본이 벌인 전쟁쯤으로만 알려져 있다. 왜 그럴까. 20세기 중반 중국사는 승자인 중국 공산당의 역사로 각색돼 있다. 일본 역시 중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까닭에 실패한 전쟁으로 치부했다. 이 때문에 현대 동아시아 판도를 결정지은 중일전쟁은 중국, 일본 어느쪽에서도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중일전쟁은 양쪽 병력을 합쳐 100만명 이상의 대규모 병력이 맞붙은 전투만도 여러 차례일 정도로, 양국이 국운을 걸고 진검승부를 벌인 대전이었다.

우선 잘못 알려진 몇가지 사실을 들어본다. 만주사변 당시 군벌 장쉐량은 장제스의 명령으로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지 못한 채 패퇴했다, 중일전쟁에서 마오쩌둥은 유격전술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장제스 정권은 부정부패하고 무기력했으며 내전에만 광분했다.

저자는 신간 ‘중일전쟁-용, 사무라이를 꺾다’에서 이런 통념들이 잘못되었음을 사료를 근거로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가 바로잡은 사실은 대략 이렇다. 장제스는 후퇴하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장쉐량은 장제스의 지시를 무시한 채 패퇴하고 말았다. 장졔스는 1930년대 내내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단일화한 중앙 명령체계 구축과 군의 현대화, 열강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외교적 노력에 주력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한 마오쩌둥과 팔로군은 항일전쟁보다는 세력 팽창에 주력했다. 팔로군 장병 개개인은 열심히 항일투쟁에 나섰지만 마오쩌둥 등 공산당 지도부는 사회주의 혁명을 명분으로 집권에 더 광분했다는 것 등이다.

중일전쟁 와중에 편성된 장제스 직계의 독일식 사단이 분열하고 있는 모습. 중정식 소총이나 독일에서 수입한 Kar98k 소총으로 무장했으며, 질서정연한 중국군 정예사단의 위용이 엿보인다.
저자는 특히 중일전쟁이 한반도에 미친 영향에 천착했다. 예컨대 이봉창 의사의 일왕 암살미수 사건(1932년 1월8일)이 상하이 전투(110만명 병력이 맞붙음)를 불렀고, 상하이 전투 직후 일본군의 전승 행사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1932년 4월29일)가 있었다. 또한 광복군 창설에 얽힌 비화, 허무하게 끝난 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 배우 장동건 주연의 블록버스터 영화 ‘마이웨이’로 제작된 ‘노르망디의 조선인’과 일제의 조선인 징용, 위안부 문제, 제2의 오키나와가 될 뻔했던 제주도의 결전계획 등은 중일전쟁과 연관이 깊다. 장졔스가 무슨 이유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태평양전쟁 참여를 막았는지 등의 비사도 생생히 전해준다.

미국 역시 중일전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6·25전쟁 판세를 오판했다. 연합군총사령관 맥아더는 중공군을 원시 보병부대쯤으로 폄하한 나머지 그들의 전술에 말려들어 6·25전쟁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 미군에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준 장진호 전투에 이은 흥남철수 작전은 맥아더의 오판에서 비롯됐다. 저자는 특히 6·25전쟁 당시 중공군을 낡은 소총을 들고 인해전술을 펼치는 군대쯤으로 비하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편견인지 깨닫게 해준다. 자동화기와 장갑차, 전투기 대포 등으로 무장한 장졔스의 중공군은 일본군의 전략을 바꾸도록 만들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1937년 12월17일 중국 난징에서 열린 일본군의 승전 퍼레이드. 선두에 선 사람이 중지나방면군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 대장이다.
그는 “장졔스 군대의 완강한 저항으로 일본은 중국 전선을 포기하고 남방 진격으로 방향을 바꾸었으며 결국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전쟁을 촉발시켜 패망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저자는 중국 공산당이 최후 승자가 된 것은 장졔스 군대가 일본과의 전쟁에서 힘을 소진한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그는 “장졔스 군대와 일본이 맞붙은 중일전쟁 동안 와신상담 힘을 길러온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전쟁이 끝날 무렵에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결국 1945년 일본의 패전 직후 시작된 내전에서 국민당은 패배하고 만다. 그러면서 중일전쟁은 공산당 승리의 역사로 도배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저자 권성욱(41)은 울산의 공무원이지만 전쟁사를 전공(조선공학)보다 더 좋아해 20년간 전쟁사 관련 책들을 독파했다. 전쟁사에 관심을 쏟아온 저자의 집념과 노력의 결실이 이 책이다. 그가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 쓴 글들이 이 서적의 바탕이 됐다. 저자는 1937년 7월 이른바 루거우차오(盧溝橋) 사건부터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까지 8년 1개월간 벌어진 중일전쟁을 여러 모로 살핀다.

국내외 200여편의 논문과 책을 참고한 저자는 91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을 쓰는 데 4년 반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글뿐만 아니라 전황을 담은 지도 35장과 중국 육군과 일본 육군의 계급, 중일전쟁에서 사용된 주요 무기, 중일전쟁 기간 군 편제 및 전투 서열까지 꼼꼼히 정리해 사료로서 가치도 크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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