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정병호의법률산책] 세입자 배신한 최우선변제권

관련이슈 정병호의 법률산책

입력 : 2015-03-03 22:04:13 수정 : 2015-03-03 22:04:1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전세가 천정부지로 뛰어 서민들 삶이 고달프다. 전세보증금 반환과 관련해 안타까운 사연도 이어지고 있다. 작년 여름 인천의 한 아파트에 세 들어 살던 장애인이 가족을 남기고 분신자살한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가장은 세 들어 살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 보증금 2500만원을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게 된 처지를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지난 1월 말에도 인천의 한 다세대주택에 사는 젊은 미혼모가 보증금 2400만원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6개월 된 아이와 함께 거리로 쫓겨나게 된 사연이 전해졌다.

최우선변제권이 화근이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현재 인천의 경우 보증금이 8000만원 이하인 임차인은 보증금 가운데 2700만원까지 저당권자보다 우선해 보호받는다. 전세 들어갈 때 이미 저당권이 설정됐더라도 상관없다. 자살한 장애인과 미혼모는 최우선변제권이 있으므로 보증금을 다 돌려받을 수 있다는 무자격 중개인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전세계약을 했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집이 경매에 넘어갔으니 장애인과 미혼모가 보증금 전부를 돌려받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최우선변제권이 그들을 배신했다.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저당권을 설정 받은 금융기관에서 전세계약이 ‘사해(詐害)행위’로서 무효이기 때문에 보증금을 돌려주면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민법은 채무자가 이미 채무초과 상태에서 자신의 유일한 부동산을 다른 사람에게 매각하거나 저당권을 설정함으로써 채권자를 해치는 경우, 채권자로 하여금 채무자와 그 상대방인 수익자의 거래를 취소할 수 있게 한다. 두 사건에서 모두 전세계약 당시 집주인은 집을 매각해도 금융기관의 빚을 다 갚을 수 없는 상태였다. 말하자면 ‘깡통주택’이었던 셈이다. 집주인과 무자격 중개인이 짜고 세입자를 시세보다 싼 전세로 유혹한 것이다.

세입자들은 사기를 당했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다. 사기꾼들은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보증금 반환 문제에 대해서 법은 상당히 엄격하다. 대법원은 민법 규정에 따라 집주인의 악의가 인정되면, 세입자의 악의도 추정된다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세입자로서는 스스로 자신이 집주인의 사해행위를 알지 못했음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시세보다 현저하게 싸게 전세를 얻었다면 집주인의 사해행위를 알았다고 의심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장애인과 미혼모가 사해행위를 알았다고 보이지 않는다. 채무자의 사해행위가 있으면 거래 상대방의 악의를 기계적으로 추정하는 법이 문제다. 경우에 따라서는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에서는 학자들의 견해와 외국법을 참조해 수익자가 채무자의 친족 등 특별한 관계에 있을 때만 수익자의 악의를 추정하는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에 따르면 위 사건과 같은 경우 금융기관이 세입자의 악의를 입증하게 되므로, 세입자가 구제받을 가능성이 높다. 민생과 관련된 개정안의 입법이 시급하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