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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사드와 정부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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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03 22:05:08 수정 : 2015-03-03 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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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분야, 정부 거짓말 빈번
금세 들통 날 얘기도 일단 숨기기 일쑤
‘사드 배치 협의’ 진실공방에 답답
정부의 거짓말을 파헤친 대표적인 언론인이라면 미국의 I F 스톤(1907∼1989)을 꼽을 수 있다.

베트남전쟁 확전의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의 조작 가능성을 처음 제기한 인물이 바로 스톤이다. 미국 국방부는 1964년 8월4일 베트남 동쪽 통킹만에서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이 미국 구축함 매덕스호를 향해 어뢰와 기관총으로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발표한다. 이 해상전투를 빌미로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한다. 그러나 훗날 당시 미국 측 주장은 상당부분 조작된 허위였음이 드러난다. 통킹만 사건 발생 몇 주 후에 미국 정부의 날조라고 주장한 스톤은 기회가 될 때마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미국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체로 모든 정부가 다 그렇다”고 말해 왔다. 

박창억 외교안보부장
정부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담대하게 일삼는지 추적해온 인물로 역사학자 하워드 진(1922∼2010) 전 미국 보스턴대 교수도 빼놓을 수 없다. 일부에서는 하워드 진에게 ‘좌파’, ‘과격’이라는 딱지를 붙이지만, 정부의 거짓말에 관한 한 그의 주장에는 경청할 만한 대목이 많다. 진은 저서 ‘왜 대통령들은 거짓말을 하는가’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삼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발언 등을 신랄히 비판한다. 하워드 진의 결론 역시 스톤의 말과 똑같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정부의 거짓말은 유독 외교·안보 분야에서 빈번하다. 거짓말을 하며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명분이 ‘국익’, ‘대외관계의 특수성’이다. 이를 감시할 언론도 ‘국익’이라는 말에 잠시 예봉을 접을 때가 많다. 얼마 전 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는 2009년 10월 당시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 부장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비밀협상을 벌인 내용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그러나 당시 임 장관의 북한 고위층 접촉 정황을 다룬 언론보도에 정부는“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었다. 대북 관계의 특수성을 내세운 정부 설명에 언론의 추적 의지도 누그러졌다. 정부가 몇 년 후에나 밝혀질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금세 들통 날 뻔한 얘기도 일단 숨기기 일쑤다. 1998년 8월 벌어진 한국과 러시아의 ‘스파이 맞추방’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굴욕적으로 백기 투항하여 추방한 러시아 스파이의 재입국을 허락해 놓고도 사실이 아니라고 잡아뗐으나, 며칠 후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최근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의 핵심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싸고 한·미 간 협의를 했네, 안 했네 하며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전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이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브리핑에서 “한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그때 방한한 데이비드 헬비 미 국방부 동아시아 차관보는 “한·미 간 협의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우리 정부는“사드 배치와 관련해 미국의 요청도, 한·미 간 협의도 없었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양국 간 같은 대화 채널 안에서 누구는 “협의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누구는 “협의한 적 없다”고 하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평생 군복을 입고 살아온 한민구 국방장관이 “전략적 모호성” 운운하며 노회한 정치인처럼 알 듯 모를 듯 한 답변을 내놓는 것도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사드는 고도 150㎞까지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상층(上層)방어 요격미사일체계이다. 사드의 ‘눈’인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1800㎞에 달해 한반도에 배치되면 북한은 물론 중국의 미사일 발사까지도 탐지할 수 있다. 최근 창완취안(常萬全) 국방장관이 우려를 표명하는 등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드 배치는 한·미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중 관계도 고려해야 할 복잡하고 미묘한 사안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언제까지 “한·미 간 협의한 적 없다”고만 할 것인가.

다시 스톤은 말한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관리들이 거짓을 유포하면서 자신들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때, 그런 나라에는 곧 재앙이 닥친다.”

박창억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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