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 들통 날 얘기도 일단 숨기기 일쑤
‘사드 배치 협의’ 진실공방에 답답 정부의 거짓말을 파헤친 대표적인 언론인이라면 미국의 I F 스톤(1907∼1989)을 꼽을 수 있다.
베트남전쟁 확전의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의 조작 가능성을 처음 제기한 인물이 바로 스톤이다. 미국 국방부는 1964년 8월4일 베트남 동쪽 통킹만에서 북베트남 어뢰정 3척이 미국 구축함 매덕스호를 향해 어뢰와 기관총으로 선제공격을 가했다고 발표한다. 이 해상전투를 빌미로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한다. 그러나 훗날 당시 미국 측 주장은 상당부분 조작된 허위였음이 드러난다. 통킹만 사건 발생 몇 주 후에 미국 정부의 날조라고 주장한 스톤은 기회가 될 때마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미국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체로 모든 정부가 다 그렇다”고 말해 왔다.
박창억 외교안보부장 |
정부의 거짓말은 유독 외교·안보 분야에서 빈번하다. 거짓말을 하며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명분이 ‘국익’, ‘대외관계의 특수성’이다. 이를 감시할 언론도 ‘국익’이라는 말에 잠시 예봉을 접을 때가 많다. 얼마 전 출간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는 2009년 10월 당시 임태희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 부장이 싱가포르에서 만나 비밀협상을 벌인 내용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그러나 당시 임 장관의 북한 고위층 접촉 정황을 다룬 언론보도에 정부는“사실무근”이라고 펄쩍 뛰었다. 대북 관계의 특수성을 내세운 정부 설명에 언론의 추적 의지도 누그러졌다. 정부가 몇 년 후에나 밝혀질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금세 들통 날 뻔한 얘기도 일단 숨기기 일쑤다. 1998년 8월 벌어진 한국과 러시아의 ‘스파이 맞추방’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굴욕적으로 백기 투항하여 추방한 러시아 스파이의 재입국을 허락해 놓고도 사실이 아니라고 잡아뗐으나, 며칠 후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최근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의 핵심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둘러싸고 한·미 간 협의를 했네, 안 했네 하며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전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이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브리핑에서 “한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그때 방한한 데이비드 헬비 미 국방부 동아시아 차관보는 “한·미 간 협의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우리 정부는“사드 배치와 관련해 미국의 요청도, 한·미 간 협의도 없었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양국 간 같은 대화 채널 안에서 누구는 “협의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누구는 “협의한 적 없다”고 하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평생 군복을 입고 살아온 한민구 국방장관이 “전략적 모호성” 운운하며 노회한 정치인처럼 알 듯 모를 듯 한 답변을 내놓는 것도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사드는 고도 150㎞까지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상층(上層)방어 요격미사일체계이다. 사드의 ‘눈’인 레이더는 탐지거리가 1800㎞에 달해 한반도에 배치되면 북한은 물론 중국의 미사일 발사까지도 탐지할 수 있다. 최근 창완취안(常萬全) 국방장관이 우려를 표명하는 등 중국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드 배치는 한·미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중 관계도 고려해야 할 복잡하고 미묘한 사안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언제까지 “한·미 간 협의한 적 없다”고만 할 것인가.
다시 스톤은 말한다.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관리들이 거짓을 유포하면서 자신들도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을 때, 그런 나라에는 곧 재앙이 닥친다.”
박창억 외교안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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