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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공직자의 부인보다 공직자인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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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03 22:07:51 수정 : 2015-03-03 22: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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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압송되어 가면서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하고 피를 토한 청음 김상헌이 가르쳐줬다는 뇌물 퇴치법은 이랬다. 관직에 있는 사람이 김상헌을 찾아와 “안사람이 번번이 뇌물을 받는다고 비난이 들끓고 있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털어놓았다. 김상헌이 이르기를 “부인이 말하는 것을 하나도 들어주지 않으면 청탁이 자연히 없어질 것입니다”라고 했다. 김상헌의 말을 그대로 따라 부인이 뇌물을 받고 아무리 부탁해도 거들떠보지 않자 뇌물 청탁 효과가 없음을 알고 뇌물을 바치는 사람이 없어졌다고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들이 범죄의 희생양이 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꾼들이 공직자 부인을 뇌물수수 통로로 삼아 온갖 청탁을 일삼는 경우인데, 남편은 공직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패가망신한다. ‘아내를 잘못 얻으면 대들보가 부러진다’는 속담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최근에 새누리당 의원의 부인이 지난 지방선거 때 후보 공천을 대가로 거액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남편은 금품수수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부인에게 돈을 돌려주라고 말했고 이미 돌려준 것으로 믿었다”고 진술해 처벌받지는 않았지만, 집안 단속을 제대로 하지 못한 죄가 가볍지 않다.

김영란법의 국회 통과로 시선이 부인들에게 쏠리고 있다. 공직자와 언론인, 교사들인 남자들이 금품을 받는 것보다 그들의 부인이 금품을 받을까봐 더 걱정인 눈치다. 어제 몇몇 신문은 김영란법을 다룬 기사에서 ‘교장 부인이 골프채 받으면 교장이 형사처벌 대상’, ‘배우자가 금품 받았을 때 알고도 신고 안 한 공직자 처벌’, ‘공무원 아내가 남편 몰래 선물 받으면’ 등등으로 제목을 크게 뽑았다. 김영란법의 엄격한 처벌 규정을 강조하려는 뜻이겠으나 가만히 있는 부인들을 끌어다가 ‘남편 몰래 뒷돈이나 받아 챙기는 철딱서니없는 여편네’쯤으로 여긴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세상물정 모르고 사리분별 못 하는 아내 때문에 속썩는 남편이 적지 않지만 천지분간 못하는 남편 때문에 속이 뒤집어진 아내들도 수두룩하다. 어느 쪽이 더 많은지 내기를 건다면 서슴지 않고 ‘남편 때문에 속 끓는 아내’ 쪽에 걸겠다. 이 땅의 아내들은 평강공주, 박씨 부인의 후예들이다. 여자들 걱정은 붙들어 매시고 남자들만 밖에서 한눈파는 일이 없도록 마음가짐 몸가짐에 각별히 신경 쓰면 된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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