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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가게 찾아다니며 ‘작별인사’, “아미가… 언제 올거야?”

입력 : 2015-03-05 22:24:19 수정 : 2015-03-05 22: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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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49〉 도미니카와 석별의 정 나누다
떠나기 전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여행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이제부터 단골 가게를 찾아 나섰다. 한두 군데가 아니기에 다시 찾아 인사를 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길을 가던 중 배가 고파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었던 식당이 단골이 된 이유는 역시 맛 때문이다. 법원 앞에 있는 식당은 바쁜 이들이 빨리 먹을 수 있도록 뷔페식으로 차려놨다. 음식을 보고 고르면 접시에 담아 준다. 가격이 저렴해 푸짐하게 한 상 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이 식당에서 제일 맛있는 건 해산물 샐러드와 쇠고기 요리다. 특히 마음에 드는 건 음식이 짜지 않다는 점이다. 도미니카공화국 요리 대부분이 짜서 소금을 빼달라고 항상 말해야 했다. 미리 해놓은 음식만 제공하는 이 식당에서 만약 음식이 짜기라도 했다면 아예 못 먹었을 것이다. 짜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맛까지 좋으니 단골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해산물 샐러드는 레몬 드레싱만 살짝 뿌려 상큼하고 맛있다. 쇠고기 요리는 한 접시 더 먹게 한다. 우리나라 소갈비찜과 비슷한 요리로 매우 맛있다. 이곳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법조인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 사람들이 와서 밥을 먹는다. 이 더운 나라에서 정장을 입는다는 게 이해가 안 갔지만, 며칠만 있어 보면 이해가 간다. 관공서나 큰 회사 건물은 실내에서 에어컨을 너무 심하게 틀어 추울 정도다. 그래서 더우면 은행에 가는 요령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정장을 입은 법조인들은 휴대전화와 서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밥을 먹는다. ‘나는 바쁜 사람입니다’ 하고 보여주는 것 같다.

단골집 중 하나인 식당에서 해산물 샐러드는 꼭 먹는다.
법원 앞이라서 시끄러운 일들이 가끔 일어난다. 화제가 된 사건의 재판이 있는 날에는 취재진이 오기도 한다. 다만 이곳은 취재진보다는 일반인이 더 몰려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난 줄 알고 나가봤지만 가끔 있는 일이다. 이 식당을 오가며 찾아낸 또 다른 장소는 공동묘지다. 공동묘지는 무덤 형태가 특이하다. 관을 땅에 묻지 않고 지상에 놓은 것처럼 되어 있으며, 관 주위를 시멘트로 발라놨다.

장묘문화를 보면 그 나라의 깊은 사상과 문화, 그리고 지리를 알 수 있다. 티베트에서 ‘조장(鳥葬)’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땅이 척박해 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수장(水葬)’을 한다. 동양에서는 좋은 묫자리를 찾아 안치하는가 하면 서양에서는 건물에 안치하는 일도 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특별히 종교가 강한 나라는 아니지만 대부분 사람이 성당을 다닌다. 그래선지 무덤에는 십자가가 있다. 관이 땅 위에 있는 까닭 중 하나는 기후다. 태풍이 많은 섬나라라는 점을 보면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건물에 안치하는 경우도 많다.

점심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저녁에는 와인을 마시던 소나콜로니알로 향했다. 스페인 와인을 많이 수입하는 도미니카공화국은 맛있는 와인을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따로 요리를 시키지 않고 와인이나 칵테일, 맥주만 시켜도 되는 집이다. 플라멩코 공연이 있는 날이면 작은 야외 무대에 불이 켜진다. 전문 댄서가 아닌, 낮에는 다른 직업이 있고 그저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이 하는 공연이다. 코코넛 껍데기로 만든 캐스터네츠 소리에 맞춰 절도 있는 춤을 선보인다. 신기해서 따라해봤는데, 생각보다 어려운 구조다. 우리네 초등학교 때 쓰던 캐스터네츠와 달리 연결된 끈을 이용해 강약을 조절해야 한다.

여행 마무리를 위해 무작정 길을 걸었다.
이 가게가 특별한 이유는 공연이 아니고 집 그 자체에 있다. 콜럼버스가 도시를 건설할 당시 지은 집에 몇 가지만 덧붙여 보완했을 뿐 그때 그 나무 그대로다. 마호가니 나무가 많았던 도미니카공화국에서는 요즘도 마호가니로 지은 집과 가구를 쉽게 볼 수 있다. 유럽인들이 마호가니를 너무 많이 가져가는 바람에 지금은 비싼 재료가 됐단다. 마호가니는 오랜 시간을 버티는 나무로 유명해 건축용 자재나 가구로 쓰면 오랜 세월을 버틴다. 이 집도 마호가니 기둥부터 기본 골격은 그때 지은 그대로라고 했다. 오래된 냄새가 나는 이 집이 좋아 자주 찾게 됐다.

그리고 이제는 친구가 된 시가(cigar·담배) 가게를 찾아갔다. 언제든 와서 놀다 가라고 하는 주인은 나이 든 할아버지다. 그는 나를 ‘아미가(amiga·친구)’라고 부르며 스페인어도 많이 가르쳐줬다. 같이 시가를 한 대 피우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가 특히 좋아한 것은 그가 직접 담근 술이다. 나뭇가지에 꿀과 럼주를 넣어 만든 ‘마마 후아나’를 얼마든지 제공해줬다. 마마 후아나는 달달하지만 도수가 꽤 높은 술이다. 어떤 술이든 많이 마시면 취하겠지만, 특히 마마 후아나는 달아서 취하는지 모르고 마시다 어느 순간 취하게 된다. 그에게 “이제는 떠난다”고 말했을 때 그가 들려준 답이 기억에 남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언제 올 거야?”라고 반문해 내가 멀리 떠나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 같은 여운을 남겼다.

맑은 하늘과 색색이 칠해진 건물이 조화롭다.
길을 가다 만난 친구들은 다시 보기 힘들었다. 그래도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하듯 거리를 쏘다녔다. 나 혼자 하는 인사지만, 어쩌면 이 길이 대답을 해주는 것만 같다. 정들었던 길이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해주는 기분마저 들었다. 도미니카공화국은 화가 날 정도로 더워 지친 순간에 언제나 웃게 만들어줬다. 너무 더운 날씨를 가졌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지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즐거움이 있고, 행복이 있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하러 갔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니까 옆 동네 놀러 가는 사람 취급한다. 내가 다시 올 거라는 걸 아는지, 아니면 떠나는 사람에 대한 아쉬움인지 모르겠다. 그런 인사 덕분에 내 마음도 훨씬 가벼워진다. 집을 정리하고, 물건을 정리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필요한 걸 한두 개씩 사다 보니 살림살이가 늘었고, 내 배낭은 무거워져만 갔다. 하지만 언제나 내 배낭은 내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담는다. 행여 짐이 늘면 필요 없는 것만 빼면 그만이다. 내 삶의 무게도 내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것을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때로는 나눠주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으로 돌려보낼 필요도 있다. 그래야만 새로운 걸 담을 수 있을 테니까.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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