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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판결’… 서양 희곡에 판소리 입히다

입력 : 2015-03-05 21:41:06 수정 : 2015-03-06 11: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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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연출가 정의신 실험작
전통 창극 ‘코카서스의 백묵원’
“저는 재일교포 연출가라 한국 전통을 잘 모르기 때문에 창극에 어떻게 도전할지를 고민해 왔습니다. 판소리에는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 작품을 시작했습니다.”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등으로 한·일 양국에서 스타 연출가로 자리 잡은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사진)이 신작 창극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다. 오는 21∼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오르는 국립창극단의 신작 창극 ‘코카서스의 백묵원(白墨圓)’(이하 ‘백묵원’)의 극작과 연출을 맡았다.

‘백묵원’은 서사극 창시자로 불리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이다. 이 작품은 서양 극작가의 희곡을 한국 전통 창극으로 만드는 시도다. ‘백묵원’은 조지아(그루지야)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두 여인의 양육권 다툼이 줄거리다. 전쟁통에 친자식을 버리고 도망쳤으나 아이의 유산 때문에 그를 다시 찾으려는 영주 부인 나텔라와 버려진 아이를 거둬 정성껏 키운 하녀 그루셰 간의 양육권 재판을 통해 진정한 모성애란 무엇인지 묻는 작품이다. 극의 절정인 양육권 재판 장면에서는 재판관이 백묵(흰색 분필)으로 그린 동그라미 안에 아이를 세우고 두 여인에게 아이의 양팔을 잡아당기게 해 진짜 엄마를 가려낸다. ‘백묵원’은 여기에서 비롯했다.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조지아(그루지야)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두 여인의 양육권 다툼이 줄거리로, 현대인에게 진정한 모성애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국립극장 제공
원작에서 노래를 부르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가수 역할을 재판관 아츠닥에게 맡겨 전통 창극의 도창(導唱) 형식으로 재창조했다. 원작에서 남성이었던 아츠닥을 여성 배우에게 맡기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창극배우를 그루셰 역에 발탁하는 등 원작 인물의 과감한 재해석도 시도했다.

정의신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예전에 영화 시나리오를 쓸 당시 한국에 왔다가 영화 ‘서편제’ 주연배우 오정해씨와 함께 노래방에 갔다. 그분 노래를 듣노라니 판소리에 사람의 감성을 흔드는 뭔가가 있음을 느꼈다“며 “이 작품을 통해 서양작품과 한국의 판소리가 어떻게 융합을 할 수 있는지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양 이야기에 동양 소리를 입히는 작업은 김성국 중앙국악관현악단 단장이 맡았다. 그는 “서양의 4인조 밴드와 현악기, 디지털 음악의 요소, 국악의 타악기 등을 비빔밥처럼 혼합하되 소리 자체는 한국 전통적 가창의 선율과 장단을 유지하는 방식의 작곡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오페라 아리아나 뮤지컬 넘버처럼 일반인들이 쉽게 부를 만한 곡도 하나쯤 만들어보려고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작품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파격적인 캐스팅. 정의신은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한 지 1년도 채 안 된 인턴 단원을 주인공으로 발탁해 관계자를 놀라게 했다. 역경 속에서도 뚝심 있게 아이를 키우는 시골처녀 그루셰 역의 조유아다. 조유아는 “오디션은 그루셰가 아니라 사투리를 심하게 써야 하는 역인 ‘농부의 아내’로 봤는데 그루셰로 뽑혀 놀랐다”며 “‘순수해 보였다’는 이유로 뽑혔는데,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정말 멋있고 순수하고 산골 처녀 같은 주인공 그루셰를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모두 행복한 삶을 맞는 원작의 결말을 비튼다. 다시 전쟁이 터지는 걸 그려 불안한 현대의 정서를 반영한다. 정의신은 “‘백묵원’이 궁극적으로 비극일지 몰라도 중간중간에 웃을 수 있는 요소를 넣으려고 한다”며 “브레히트 원작이 전쟁에 찢겨진 모습을 다루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는 전쟁과 평화에 대해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1500석 해오름극장의 객석은 비우고 대신 무대 위에 객석과 무대 세트를 가설로 세운다. 관객과 무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다. 정의신은 “‘백묵원’이라는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 하얀 원 안에 여러 가지 의미를 판소리로 펼쳐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은 “틀에 들어가지 않고 창극을 넓게 펼쳐내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의 음악극으로 만들고 싶다”며 “지금은 창극이 진화하는 과정에 있고 이 작품도 그 진화에 탑을 하나 쌓는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창극의 무한도전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2만∼7만원. (02)2280-4114∼6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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