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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국회의사당의 부엉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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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06 21:35:50 수정 : 2015-03-06 22: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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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통법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시절이 있었다. 청와대 지시를 받고 행정부가 주문하는 법안이나 통과시켜 주는 하수인 역할을 했다. 그 시절에 비하면 국회의 위상은 상전벽해했다. 지금도 정부 주문 입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부처 간 의견 충돌이나 복잡한 절차를 피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의원입법을 활용하는 ‘차명 발의’가 도마에 오르곤 한다. 그래도 통법부 시절에 비할 바가 아니다. 주문 생산은 고사하고 의원들이 너무 많은 법안을 제출해 뒷감당이 어려울 정도다.

국회의원들의 입법 실적 경쟁이 뜨겁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건수는 급증하고 있다. 14대 국회 321건에서 15대 1144건, 16대 1912건, 17대 6387건, 18대 1만2220건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19대국회에서는 임기 종료가 1년6개월 남은 지난해 말 현재 1만1697건으로 18대 국회 전체 발의 건수와 비슷하다. 하지만 발의 법안 중 국회를 통과한 가결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15대 국회에서는 40.3%였으나 16대 때는 27%, 17대 21%, 18대 13.5%로 떨어졌다. 19대 국회는 9.2%로 더 낮아졌다. 양만 늘었지 법안의 질은 형편없다는 얘기다.

묻지마식 법안 발의 폐해가 심각하다. 전문성도 없는 의원이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또는 포퓰리즘적 발상으로 재정비용이나 사후평가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일단 내고보자는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법안 제출이 적지 않다. 여기에 졸속 심사까지 가세해 부실입법으로 이어지면 그 결과는 재앙 수준이다. 의욕만 앞세워 졸속 심사로 밀여붙여 탄생한 부실입법의 완결판인 ‘짝퉁 김영란법’이 그렇다. 무소불위의 입법권 남용을 어떻게 통제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혜의 신 미네르바가 데리고 다니는 부엉이는 세상을 살피고 세상에 신의 말을 전하는 전령 역할을 했다. 그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날아오른다고 헤겔이 ‘법철학’ 서문에 썼다. 모든 일은 끝난 뒤에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약하자면 우리 사회에 미네르바의 부엉이 같은 존재들이 너무 많다. 해석하거나 평가하는 것 말고 직접 나서 해결할 줄도 알아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법 해석이나 적용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것 말고 좋은 법을 제대로 만드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김기홍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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