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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갈대밭으로 떠난 마지막 겨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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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이 움트기 시작하는 때다. 땅속 가득한 새 생명의 꿈틀거림은 지난 사계절의 희로애락을 빨리 털어내고 새로운 사계절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재촉한다. 그래서일까. 추운 계절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겨울여행은 인간세상에 사는 이들에게도 각별하다. 아직은 스산한 겨울 풍경 밑바닥으로 미세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을 맡으며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회다.

봄의 초입이지만 순천만은 황금빛 갈대로 아직 겨울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갈대잎 사이로 부는 봄바람의 온기가 유난히 따스하다.
초봄의 순천만은 겨울 풍광과 봄기운을 함께 느끼기에 안성맞춤의 공간이다. 순천만 하면 떠오르는 것은 거대한 갈대밭이다. 3월이 열흘을 훌쩍 넘겼지만 아직 그곳은 황금빛 갈대들로 겨울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혹독한 계절을 버텨냈기에 경외감까지 느껴지는 갈대를 보며 움터오는 봄의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인근 동천의 물이 흘러내리며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순천만의 풍경.
순천만 갈대밭은 시화호, 서천 신성리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 갈대 군락지다. 인근 동천의 물이 만으로 흘러내리며 만드는 S자 수로 양쪽으로 군락을 이룬 형태다. 495만㎡가 넘는 국내 최대 규모다. 순천만자연생태공원 내 선착장을 지나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이름을 빌려온 무진교를 건너면 셀 수 없이 많은 갈대가 여행객을 맞는다. 갈대밭에는 나무데크가 조성돼 여유롭게 감상하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산책로 주변에 껑충 자라있는 갈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시야를 어지럽힌다. 3월 초 남도 해풍에는 봄기운이 살짝 감돌기 시작한다. 바람 속에 감춰진 따스한 온기를 느끼면서 갈대 속을 걷는 기분은 일품이다.

무진교에서 용산전망대로 향하는 1.2㎞ 길에는 나무데크가 설치돼 갈대를 보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순천만은 갈대만의 공간이 아니다. 너른 갯벌과 염습지가 발달한 온갖 생명의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최근엔 철새들 안식처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갈대 속을 헤매다 보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다. 이곳에서 겨울을 난 뒤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새들의 울음일 것이다. 운이 좋으면 이들 중에서 세계적인 희귀조류를 발견할 수도 있다. 현재 순천만에서 월동하는 것으로 확인된 철새 가운데 33종은 멸종위기 조류다. 2000년대 초반 순천만이 세계적인 생태보고로 주목받게 된 계기를 마련한 흑두루미를 비롯해 검은목두루미,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민물도요, 큰고니, 혹부리오리 등이 이곳에 몸을 의탁한다. 봄이 오면 민물도요, 중부리도요, 마도요, 개꿩, 흰물떼새 등이 시베리아에서 호주 남부로 이동하는 길에 이곳에 들른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순천만은 2006년 국내 연안습지로는 처음으로 세계자연보호연맹(IUCN)이 선정한 람사르습지로 공식 등록됐다. 희귀 조류와 갯벌 저서생물, 염생식물 등 다양한 생물종이 풍부한 중요한 생물 서식지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새소리를 들으며 갈대밭을 1.2㎞ 정도 걷다보면 용산이라는 이름의 야트막한 산이 나타난다. 용이 승천하다 경치에 반해 여의주를 바다에 던지고 산이 되어 자리 잡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높이는 77m에 불과하지만 갯벌과 갈대밭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용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능선을 따라가는 ‘다리아픈 길’과 산 옆자락으로 완만하게 돌아가는 ‘평탄한 길’로 나뉜다. 

완만한 길이 걷기에는 수월하지만 조망은 능선길이 더 좋다. 산을 오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다보면 갈대와 갯벌이 어우러지는 쇼가 펼쳐져 등산객 가슴을 설레게 한다. ‘다리아픈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어도 워낙 산이 낮아 오르기도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용산에서 바라본 순천만 낙조. 순천만은 두 개 반도가 에워싸는 지형으로 다른 갯벌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평화로운 광경이 연출된다.
정상 용산전망대에 이르면 장관이 이어진다. 순천만 갯벌은 바다를 향해 광활하게 펼쳐진 서해안 여느 갯벌과는 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가 좌우로 에워싸고 있는 독특한 지형이 따뜻하고 평화로운 풍광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사진애호가들의 발길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이유다. 순천만 낙조의 장관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여기에 갯벌을 부드럽게 가로지르는 S자 해수로와 그 해수로를 평화롭게 떠다니는 어선들, 석양 속에 그 자태가 더욱 빛나는 갈대밭이 더해지면 순천만의 낙조가 완성된다. 고급 카메라가 아니어도, 프로급 사진기술을 갖지 못해도 상관없다. 평생 기억에 남는 장면을 담을 수 있다. 해질 시간을 미리 체크한 뒤 한 시간 정도 일찍 출발해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때를 놓치지만 않으면 된다.

순천=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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