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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남는 건 사람과 그 이야기였다

입력 : 2015-03-12 21:33:26 수정 : 2015-03-12 21:3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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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올라 카리베] 〈50·끝〉 아디오스, 카리브의 빛나던 물결!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자메이카를 여행하고 다시 돌아온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이번 여행을 마무리한다. 남미 대륙까지 여행하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여행은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이번 여행이 나를 여기까지만 안내해줬다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꼭 한 번은 요트를 타고 카리브해를 여행하고 싶다. 그렇게 여행하는 사람을 만난 적도 있다. 자유롭게 정박하고 싶은 곳에 배를 묶어둔 다음 그 나라를 여행하다가 다시 배를 타고 카리브해를 떠돌고 싶다.

카리브해는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를 가진 섬나라들로, 대륙 구분상 중남미에 속한다. 미국에서 멕시코로 이어진 남미로 향하는 길목인 나라들도 중남미에 속한다. 섬나라를 여행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교통수단이다. 

난간에 앉아 있는 여인의 사연이 궁금하면 다가가서 직접 물어보면 된다.
중동에서 아프리카까지 육로로만 이동한 예전 여행과 달리 이번에는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생각만큼 배편이 존재하지 않았다. 가까운 나라라서 배로만 이동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했다. 너무 가까운 이웃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다른 탓인지 왕래가 잦지 않다. 한 섬을 반으로 나눠 동쪽은 도미니카공화국이고 서쪽은 아이티다. 동쪽에서는 스페인어를 쓰고, 서쪽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이 섬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 자메이카는 영어를 쓴다. 이웃나라 쿠바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쿠바와 도미니카공화국은 스페인어를 쓰지만, 사상이 다르기 때문에 교류가 별로 없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동쪽으로 더 가면 작은 섬나라가 많다. 그 섬나라들은 미국령, 프랑스령, 영국령 등으로 언어가 뒤섞여 있다. 아프리카 흑인들을 데려다 놓았던 나라에서는 아프리카어까지 사용한다. 카리브해에 떠있는 작은 섬나라들끼리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다.

아프리카인이 유난히 많은 중남미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여행할 때 언어가 걸림돌이 되진 않는다. 그래도 여러 언어를 해야 하는 부담감은 늘 있었다. 기본적인 영어는 잘 통하지 않고, 스페인어만 쓰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언어와 이동수단이 생각만큼 수월하진 않았다. 가까운 나라끼리도 직항이 없는 경우가 있어 미국을 경유해야 했다. 미국을 경유할 경우에는 그저 남미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짐 검사까지 당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비행기를 놓칠 뻔한 일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만 하면 여행이 시작된다. 그때 오는 안도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평온을 가져다 준다. 무사히 도착하면 여행은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게 된다.

사진도 사람이 있어야 완성된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사람 이야기다.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고 세월을 이겨온 건축물을 접하고,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 아무리 멋진 경관을 가지고 있고 문화유산이 있어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싫어지면 그 나라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반대로 볼 것 하나 없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좋다면 그 나라가 좋아지기도 한다. 여행에서 추억으로 남는 건 사람과 이야기를 만들어낸 장면들이다. 그러면서 친구가 되고 그 나라를 이해하게 된다. 이해한다고 해도 그 깊이는 별로 깊지 않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선 그 나라를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친구’라는 이름으로 거기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실마리라도 찾아보려는 것이다. 혼자서 느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앞선 여행자의 경험담을 그대로 믿고 갔다가 전혀 다른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여행자의 글은 믿을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자기만의 경험을 적은 수기 정도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도에 대한 환상이 담긴 책이 많이 나왔을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다. 그때 인도로 떠난 많은 사람의 절반가량은 인도가 싫어져 돌아오곤 했다. 물론 나는 인도가 좋았다. 그건 그 환상을 믿지 않고 밑바탕에 아무런 기대도 없이 갔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파리의 에펠탑도 너무 큰 기대를 하고 가면 철제물이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 삭막한 철제물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파리의 야경이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밤에 에펠탑에 불이 켜지고 멀리서 그 빛을 바라보며 파리지앵과 함께 또는 혼자 와인을 마실 때 아름다움으로 남았다.

내가 좋아한 카페. 다양한 사람과 만나 인연을 쌓은 장소다.
여행에서 뭔가를 얻으려는 목적을 갖고 떠났다가 오히려 아무것도 못 얻을 때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은 아무 이유 없이 무작정 떠나는 것이다. 정보를 찾아 이미 알고 있는 걸 경험하는 것과, 경험하고 나서 정보를 더해가는 것은 차이가 크다. 예를 들어 고흐 작품을 감상할 때 화가가 어떤 사람이고 이 그림은 어떤 그림이라는 걸 알고 본다면 고정관념에 갇혀 딱 그것만 보게 된다. 하지만 아무 정보 없이 그림을 본다면 더 많은 걸 보게 된다. 그러고 나서 정보를 찾아봐도 늦지 않는다. 관심이 가는 그림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찾아본다면 더 많은 부분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보다는 “아는 것만 보게 된다”고 말하고 싶다. 여행에서도 편견 없이 바라보고, 그 나라 역사가 궁금해지면 그때 찾아보면 된다. 그러면 더 많이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후광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을 먼저 볼 수 있다면 더 좋은 관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머리를 예쁘게 땋았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밖을 바라봤다. 구름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줄기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지금 이곳은 여행이 끝나는 지점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도 여행처럼 즐겁게 설레면서 때로는 모험도 하고 때로는 길을 잃을 수도 있는 여행이길 바란다.

강주미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강주미의 ‘올라 카리베’가 이번 주로 끝을 맺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강주미의 ‘짜이 한 잔’이 연재됩니다. ‘짜이’는 인도와 네팔 사람들이 늘 곁에 두고 마시는 차입니다. 필자가 9개월 동안 티베트, 네팔, 인도 등을 여행하며 겪은 일과 현지 문화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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