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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없으면 돈 있어도 안 팔아요

입력 : 2015-03-16 21:25:05 수정 : 2015-03-16 23: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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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 높은 ‘무용 저작권’의 세계 1992년 유니버설발레단(UBC)은 존 크랑코 재단 측과 접촉했다. 크랑코가 안무한 명작 ‘오네긴’의 공연 저작권 구매를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대답은 ‘노’였다. 한국 발레가 세계 무대의 변방에 머물던 시절이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동양 발레단에 공연을 허락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2000년대 후반, UBC는 다시 크랑코 재단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흔쾌히 ‘예스’라는 답이 왔다. UBC가 한스 반 마넨, 윌리엄 포사이드 등 세계적 안무가들의 모던 발레를 공연하고 북미, 유럽으로 진출한 모습에 신뢰를 보인 것이다. UBC는 이렇게 2009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오네긴’을 무대에 올릴 수 있었다.

상품은 많이 팔릴수록 이익이다. 무용 안무 세계는 다르다. 명성이 높은 안무가들은 구매자들을 골라가며 저작권을 소수에게만 판다. 실력이 떨어지면 이들 작품을 살 수가 없다. 무용이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기에 나타나는 ‘무용의 법칙’이다. 지난 20여년간 국내 발레단의 공연작품 폭이 넓어지고 내용이 풍부해진 건 해외시장에서 그만큼 한국 발레가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된다.

발레단이 확보한 안무 저작권은 발레단의 실력과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사진은 유니버설발레단이 공연하는 나초 두아토의 ‘멀티플리시티’.
UBC 제공
◆돈 있어도 못 사요… 명작 안무

명작 안무 저작권이 ‘다다익선’의 판매법칙을 따르지 않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안무를 초연한 발레단이 훌륭한 작품을 독과점하면 해외 초청 기회가 많아진다. 그 작품을 보고 싶은 이들이 발레단을 직접 부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발레단 몸값도 자연스레 올라간다. 이런 콧대 높이기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장광열 춤 평론가는 “네덜란드댄스시어터의 지리 킬리안은 공연 비디오를 만들지 않아 그의 작품을 보려면 원작 공연팀을 불러야 한다”고 밝혔다.

실력이 부족한 발레단에 안무 사용을 허락하면 안무가 의도와 엇나간 몸짓이 나올 위험도 있다. 작품성이 훼손되고 안무가 명성에 흠집이 생길 수 있다. 장광열 평론가는 “함부르크발레단의 존 노이마이어는 연습 결과를 보고 최종 공연 허가를 내준다”며 “유럽의 1급 안무가는 까다로운 판매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고 말했다. 장인주 춤 평론가는 “이런 관행은 내 명성과 작품을 지키고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인 만큼 오히려 시장원리에 더 충실한 것”이라고 밝혔다.

나초 두아토의 ‘두엔데’.
◆발레단 실력·위상 가늠하는 척도


유명 작품의 저작권을 확보하면 관객에게 공연을 보는 즐거움을 줄뿐더러 발레단 위상도 올라간다. UBC 공연사업팀 라선아 차장은 “20세기가 낳은 천재 안무가 중 한 명인 크랑코 작품을 한국 발레단이 공연하면 그만큼 실력있는 단체로 인정받는다”며 “어떤 작품을 올렸는지가 그 발레단의 실력과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고 밝혔다. 장광열 평론가는 “해외나 국내 발레단을 초청할 때 프로모터(기획자)의 판단 기준은 첫째 백조의 호수 전막 공연 여부, 두번째는 뉴욕타임스 등 언론 리뷰, 세번째는 레퍼토리”라며 “한 발레단이 당대 유명 안무가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 작품을 소화할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국내 발레단의 안무 저작권 확보 측면에서 이정표가 될 만한 작품들로는 UBC가 올린 ‘오네긴’,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2012)을 꼽을 수 있다.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마크 에츠의 ‘카르멘’(2006), 내달 공연하는 크랑코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역시 중요한 레퍼토리다. ‘오네긴’은 원조인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을 비롯해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영국 로열발레단 등 세계적으로 7개 발레단이 공연할 수 있다. UBC가 오는 19∼22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나초 두아토 안무의 ‘멀티플리시티’ 역시 레퍼토리 확보 면에서 의미있는 작품이다. 라선아 차장은 “두아토가 2002년 우리 발레단에 들러 연습 모습을 확인하고는 그의 20분짜리 작품인 ‘라 플로레스타’ 공연을 허락했다”고 밝혔다. 2006년 UBC는 두아토의 단막 발레인 ‘두엔데’를 공연했다. 10년 넘게 쌓은 신뢰를 토대로 UBC는 지난해 전막 모던발레 ‘멀티플리시티’ 초연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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