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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의법률산책] 현대판 생거진천 사거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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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17 21:44:12 수정 : 2015-03-17 21: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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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남은 1947년 B녀와 결혼해 장남 갑 등 3남3녀를 뒀다. 그러나 1961년쯤부터 B녀와 그 자식들과 별거하고, C녀와 동거를 시작해 1남2녀를 낳고 살았다. A가 2006년에 사망하자 후처 자식들은 아버지가 생전에 밝힌 의사에 따라 경기도 모처 공원묘지에 안장했다. 그 후 아버지의 사망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장남 갑은 이복동생을 상대로 유체(遺體) 인도소송을 제기했다. 유체는 제사주재자에게 승계되는데, 자신이 장남으로서 제사주재자라는 것이다.

모든 자식이 아버지 재산을 균분 상속하는데 본처 자식이 구태여 아버지 유체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한 이유는 뭘까. 제사주재자가 되면 분묘에 속한 1정보 이내의 금양임야(禁養林野)와 600평 이내의 묘토(墓土)인 농지를 단독 상속할 수 있다. 금양임야는 선대의 분묘 수호를 위해 벌목을 금지하고 나무를 기르는 산이고, 묘토는 분묘의 관리 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농지다. 그러나 금양임야임과 묘토임을 증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다툼의 배경이 제사용 재산의 상속문제가 아니라면, 아마도 이복동생에 대한 감정이 크게 작용했을 법하다. 후처자식이 이복형제에게 아버지의 사망 사실을 알리지도 않고 몰래 장례를 치렀기 때문이다. 게다가 누가 분묘를 수호하는가는 가계의 적통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이복동생들은 1심에서 아버지의 유훈(遺訓)을 내세웠지만, 법원은 고인의 생전의사는 제사주재자를 법률적으로 구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복동생들은 즉각 항소해 갑이 40여년 동안이나 절연해 아버지를 부양하지 않았고, 가족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가족애조차 없었다는 이유로, 갑이 종손이긴 하지만 제사주재자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절연의 책임이 갑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있다는 이유로 항소를 기각했다. 이복동생은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대법원도 장남 갑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대법관 사이에서 심각한 법리 논쟁이 있었다. 갑의 승소가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다. 화장, 수목장 등 분묘를 쓰지 않는 장례가 대세인데 유체도 제사용 재산에 준해 제사주재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이 옳은가. 또 자식 간에 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적서(嫡庶)를 불문하고 장남 내지 장손자, 장녀 순으로 제사주재자를 정하는 것이 헌법상 평등이념에 부합하는가. 그리고 제사주재자는 묏자리에 대한 고인의 의사에 법률적으로 구속되지 않는다고 봐야 하는가. 다수의견은 이를 모두 긍정했다. 그러나 제사주재자 결정방법이 과거의 종법사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죽을 때를 대비해 장기기증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미리 처분하는 것도 가능한데 자신의 묏자리조차 정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비판이 있다.

최근 간통죄 위헌 결정에서 보듯 현재의 소수의견이 앞으로 다수의견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버지는 살아서는 후처소생과 함께 지냈으니, 죽어서는 본처소생이 정한 장소에 묻혀야 하는 처지가 됐다. 현대판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살아서는 진천에서 지내고, 죽어서는 용인에서 지내라)인 셈이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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