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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 좇는 대중·권력·언론에 ‘B급 돌직구’

입력 : 2015-03-18 21:13:44 수정 : 2015-03-18 21: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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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 리뷰
‘거울 속에 사과가 비치는 거울이 있고, 이 거울 속에 사과가 비치는 거울이 있고, 다시 거울 속’이 반복되면 사과는 어느 거울에 비치는 걸까. 연극 ‘소뿔자르고주인오기전에도망가선생’은 거울 속 거울 같은 구조다. 극 중 극 형식으로 무대와 객석, 연극과 현실을 뒤섞는다. 극은 과장된 B급 코드로 당황스럽게 시작해 점점 묵직해진다. 처음에는 “이번 공연은 재미가 주제입니다”라며 머리를 비우고 보라더니 가면 갈수록 생각거리를 떠안긴다. 우리가 믿는 현실이 과연 실체가 있는지, 다들 허상을 좇는 건 아닌지, 우리 모두 남이 써준 배역에 몸을 옭아맨 채 꼭두각시가 된 건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무대에서 배우들은 액션무협 판타지쇼 ‘소뿔자르고…’ 리허설을 하는 중이다. 배경은 경찰서. 전국에서 한우 뿔이 잘려나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감식 결과 범인은 맨손으로 단번에 뿔을 잘랐음이 드러난다. B급 코드들이 마구 난무하는 순간 분위기가 급반전한다. ‘소뿔선생’을 맡은 배우가 숨진 채 발견된다. 리허설은 중단된다. 진짜 형사가 등장한다. 수사 결과 피해자는 범인에게 맨손으로 목을 일격 당해 숨졌다.

흥미로운 건 여기서부터다. 누가 소뿔을 잘랐는지, 배우 살해범은 누구인지 밝히는 사이 현실과 허구가 뒤엉켜버린다. 연극 때문에 미심쩍은 정보가 사실처럼 부풀려지고, 한번 기정사실이 된 현실은 다시 연극을 죄어온다. 연극 배역에 불과했던 ‘소뿔선생’은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돼버린다. 존재하지 않는 ‘소뿔선생’으로 소란 피우는 인간군상을 통해 연극은 허상을 좇는 대중과 권력·언론을 꼬집는다.

“수사도 작가의 일과 똑같다”, “작가도 좋은 직업이죠. 언어의 사기꾼”, “이 시대는 기자가 작가야”라는 대사들은 의미심장하다. 배우들은 작가와 감독의 지시대로 움직인다. 경찰이 등장하자 그의 말에 순응한다. 작가의 대본이나 기자와 경찰이 주무른 현실을 고분고분 따르는 배우들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연극은 우리가 갇힌 무대 너머에 진짜 인생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던진다. “우리는 이 무대에 갇혀 못 나가는 게 아니라 현실로 나갈 길을 찾고 있다”는 등장인물의 말처럼. 

심각한 주제를 담았지만 연극은 ‘이 무대 역시 무한복제된 허구’라는 듯 허허실실 끝맺는다. 작품 전반의 분위기는 오락실 무협게임처럼 떠들썩하다. 기본 색채는 ‘유치찬란 쌈마이 연기’로 무장한 B급 무협액션판타지쇼다. 최치언 작가와 김승철 연출이 손잡고 만들었다.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시즌 첫 연극으로 29일까지 공연한다. 전석 3만원. 청소년과 대학생 1만8000원. (02)758-2150.

송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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