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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죽림연우(竹林煙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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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19 17:30:25 수정 : 2015-03-19 20: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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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푸른 담양 대숲으로
초록의 싱그러움이 너무 그리워 사시사철 푸른 대숲을 만나러 갔다. 담양의 대형 대나무 군락지인 죽녹원에선 잘 가꾼 산책로를 대나무 향기를 맡으며 걸을 수 있다.
“그저 한량없이 넓은 초록색 벌판 지평선, 아무리 변화하여 보았댔자 결국 치열한 곡예의 역(域)을 벗어나지 않는 구름, 이런 것을 건너다본다. 지구 표면적의 100분의 99가 이 공포의 초록색이리라.”

작가 이상은 수필 ‘권태’에서 녹색을 ‘공포’라고 칭했다. 회색도시가 아직은 생소했던 시대의 근대인이었기에 가질 수 있었던 감상이리라. 하지만 사방천지가 온통 콘크리트 더미인 현대 도시인은 녹색이 그립다. 아직 봄이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이때, 초록의 싱그러움을 조금이라도 일찍 느껴보고 싶어서 전라남도 담양으로 향했다. 겨울과 초봄뿐 아니라 사시사철 푸른 대숲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부터 대나무 하면 담양을 제일로 쳤다. 하지만 요즘은 대나무 향취를 맡기가 더 쉬워졌다. 전국에 명성이 자자한 대나무 군락지가 두 곳이나 있는 덕분이다. 두 공간은 서로 다른 매력으로 숲 애호가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첫 번째는 죽녹원이다. 담양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담양읍 한복판에 인공적으로 만든 군락지다. 약 18만㎡의 야산에 대나무가 빽빽하다. 그렇다고 무질서하거나 어지럽지는 않다. 분죽, 왕대, 맹종죽 등 대나무들이 수종대로 가지런히 심어져 있고, 그 사이로 산책로가 예쁘게 조성돼 있다. 숲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정원 느낌이다.

숲길을 걸으면 싱그러운 푸른빛 사이로 상쾌함이 밀려 들어온다. 초봄 바람 속에 스며든 차가운 기운도 휘청대며 흔들리는 대숲을 한번 통과하면 한결 부드러워진다. 마침 하늘에는 가는 비가 뿌리고 있었다. 댓잎에 부딪히는 빗소리마저 듣기 좋다. 그 속을 걸으며 깊게 호흡을 한다. 대나무는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매우 뛰어나 대나무숲 ha당 연간 30t가량의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인다. 보통 나무의 4배나 되는 양이다. 흡수한 이산화탄소는 고스란히 산소가 돼 매연에 지친 도시인들 폐를 정화해준다. 

산책로 곳곳에는 숨을 돌릴 수 있는 고즈넉한 정자들이 마련돼 있다.
길목 곳곳에는 고풍스러운 정자도 세워져 있다. 바삐 걷지 말라는 배려다. 이에 화답해 천천히 걸으며 운동이 아닌 산책을 한다. 겨우내 그리웠던 초록을 느끼고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 소리를 음미하며 거니는 것이 제대로 산책하는 방법이다. 숲을 빠져나오면 죽향체험마을이 나온다. 고풍스러운 한옥과 담양의 대표적 정자들이 보기 좋게 재현돼 있다. 여기서 또 한번 쉬어가는 것도 좋다. 

담양습지의 대숲. 인간 손을 타지 않은 대나무의 생명력이 살아있는 숲이다.
담양습지의 우거진 대숲 사이로 나있는 산책로. 인근 영산강 바람에 실려온 대숲 향기가 싱그럽다.
죽녹원의 정제된 아름다움 대신 진짜 대숲의 울창함이 좋다면 영산강변에 위치한 담양습지도 가볼 만하다. 2004년 하천습지로서는 국내 처음으로 습지보호구역이 된 곳으로, 담양읍내에서 광주 방면으로 차로 20분 남짓 달리면 도착한다. 국내 대표적 습지인 순천만 주인이 갈대라면 담양습지 주인은 대나무다. 영산강변을 따라 길게 형성된 습지대에 대나무가 지천이다. 

담양습지 대나무군락 산책로 입구에 있는 대바구니 모양 대형 조형물.
빽빽한 대숲 사이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영산강을 끼고 출발하는 산책로 입구에는 대바구니 모양 대형조형물이 서 있다. 조형물에 써 있는 문구가 눈에 띈다. 대나무숲 안개비가 절경이라는 뜻의 ‘竹林煙雨(죽림연우)’라는 글이다. 담양습지를 방문했을 때는 마침 내리던 비가 그쳐 있었다. 여행에 나서서 비가 더 오기를 바랐던 것은 처음이다. 대숲 향기를 품으며 날아오는 영산강 바람을 맞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산책로를 걸으니 죽녹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죽녹원 대숲의 경우 정갈함이 특징이라면, 이곳의 대숲은 혼돈과 무질서함이 매력이다. 햇빛 하나 들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대숲은 거대한 열대우림을 보는 듯하다. 인공적으로 키워진 것이 아니라 오직 살기 위해 몸을 부딪치며 자라난 나무들이다. 척박한 습지에서 가늘고 가냘픈 대나무들이 쑥쑥 자라난 모습을 보면 생명의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정자와 한옥을 재현한 담양의 죽향체험마을.
이곳 습지대는 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흐르는 강물 소리, 대나무가 바람에 날리는 소리와 함께 새소리도 들을 수 있다. 담양습지에는 큰기러기, 가창오리, 흰목물떼새 등 다양한 조류가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책로 군데군데 대숲을 뒤로하고 영산강의 시원한 경치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데크도 설치돼 있다. 발걸음을 서두르지 말고 대숲 향기를 맡으며 대자연의 신비를 관망하는 것이 이곳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담양=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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