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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수줍게 봄이 내려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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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19 17:30:21 수정 : 2015-03-19 20: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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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와 낭만 어우러진 담양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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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지역을 여행하다 보면 영화나 TV드라마 촬영지로 사용됐다는 안내문구를 많이 만나게 된다. 담양에 명소가 많다는 뜻이지만 그곳들이 ‘사진발’을 잘 받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정원이 많아 조경으로 이름난 고장답다고 하겠다. 그중 으뜸가는 곳이 소쇄원이다. 소쇄원은 조선시대 별서정원 중 그 본래의 양식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는 공간이다. 별서정원이란 세속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산속 깊은 곳에 은거해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려고 만들어 놓은 정원을 말한다. 유교문화권인 조선은 관리로 출세해 나라에 봉사하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으니 정원까지 따로 지어 자연에 귀의한다는 것은 특별한 각오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소쇄원을 지은 이는 조선 중기 선비 양산보로 스승인 조광조가 사화로 죽자 은둔을 택했다. 속세의 미련을 완전히 버린 이의 작품이어서 그럴까. 소쇄원은 첫눈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소쇄원은 소박한 한옥이지만 정원 특유의 소박함이 주변 풍광과 잘 어우러진다.
그저 평범하고 소박한 한옥 두 채가 있을 뿐인데 주변의 산과 계곡, 대숲이 어우러지니 기가 막힌 풍경이 탄생한다. 다듬지 않은 자연과 건물이 조화를 이루게 하는 조선시대 특유의 조경 문화를 대표하는 곳이라 할 만하다. 

3월 초 찾은 소쇄원에서 산수유가 수줍게 여행객을 맞는다. 그 소박함이 소쇄원의 정갈함과 잘 어울린다.
소쇄원은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곳으로 유명한데 요즘은 노란 산수유가 여행객을 수줍게 맞이한다. 넓지 않은 곳인데도 다 둘러보고 나오니 꽤 시간이 지났다. 현실감을 잃게 하는 풍광에 절로 긴 시간을 머물게 된 듯하다. 

소쇄원 인근에는 가볼 만한 곳이 수두룩하다. 이 일대는 가사문학권이라고 불리는데, 조선 중기 문인들이 머물며 가사와 시조를 짓던 정자와 정원들이 많다. 동산이 있다면 문인들 이야기가 담긴 정자를 하나쯤은 만날 수 있다. 이 중 소쇄원 가까이에 있어 함께 둘러보곤 하는 식영정과 환벽당이나 정철, 송순의 명성이 함께하는 송강정, 면앙정과 달리 독수정원림과 명옥헌원림은 자칫 놓치기 쉬운 곳이다. 

독수정원림은 담양 정자의 원형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독수정원림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전신민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은거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소쇄원에서 화순 방면으로 10여분 차로 달리면 도착한다.

‘백이숙제는 누구인가. 홀로 서산에서 절개를 지키다 굶어 죽었네’라는 이백의 시구에서 이름을 딴 이 정자는 독특하게도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임금이 있는 개성을 향해 아침마다 절을 하기 위해서다. 

담양 정자들에서 제일 먼저 느끼는 정서인 풍류보다는 절개가 먼저 와닿는 곳이다. 아쉽게도 현재 만날 수 있는 독수정원림은 고려시대 전신민이 지은 것이 아니다. 고종 때인 1891년 후손들이 재건한 것으로 이후에도 수차례 보수가 이어졌다. 이 때문에 원래 건물이 그대로 이어진 다른 정자들에 비해서 고즈넉한 맛은 덜한 편이다. 하지만 담양 정자와 정원의 원형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빼놓기 아쉬운 코스다.

명옥헌원림은 소쇄원과 함께 담양 민간정원의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동백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소쇄원에서 담양읍 방면으로 15분 정도 달리면 나타나는 명옥헌원림은 민간정원으로 담양에서 소쇄원과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조선 중기 오희도가 자연을 벗삼아 살던 곳으로, 건물 앞뒤에 네모난 연못을 파고 주위에 배롱나무 등의 꽃나무와 소나무를 심어 아름답게 가꾸었다. 3월에 찾은 명옥헌원림은 동백꽃만 덩그러니 피어 있었다. 하지만 정갈하게 배치된 집과 나무, 연못만 봐도 꽃핀 명옥헌원림의 아름다움이 눈에 그려진다. 배롱나무 꽃이 핀 뒤 다시 와보리라 다짐하며 발길을 돌렸다.

조상들이 즐기던 정원을 둘러봤으니 이제 후손들이 즐기는 정원을 찾아볼 때다. 어느새 담양 하면 첫손에 꼽는 명소가 된 곳이 바로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로 자리 잡은 메타세쿼이아 길.
원래 평범한 도로였지만 인근에 우회도로를 만들고 공원화했다. 한때 허용됐던 자전거 통행도 완전히 금지되고, 군데군데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설치됐다. 이제는 누구나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당당한 담양 정원의 일원이 됐다고 할 만하다.

이 길의 주인공인 메타세쿼이아는 독특한 사연을 가졌다. 원래는 마지막 빙하기 이후 사라져 화석으로만 남아 있던 나무인데, 1940년대 중국에 집단군락이 발견되면서 ‘되살아난 화석’이 됐다. 이후 미국에서 품종 개량을 거쳐 가로수로 사용하게 됐고 1970년대부터 국내에도 도입되기 시작했다.

수억년 세월의 풍파를 이기고 인간 삶에 자리 잡은 셈이다. 담양 사람들도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던 이 가로수길이 한순간에 명소로 떠오른 것은 한눈에 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수려함 때문이다. 이 길은 사계절 풍광이 모두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한데 봄에는 검은 가지에 푸른 새싹이 돋고, 여름에는 녹색 잎으로, 가을에는 붉은빛을 띤 갈색 단풍으로 바뀐다. 겨울에는 가지에 하얗게 눈이 내린다. 아직은 새싹이 나오기 전이라 메타세쿼이아 길은 부드러운 갈색이었다. 

마침 한 쌍의 연인이 길을 따라가며 한가롭게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 뒷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수억년을 존재한 메타세쿼이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이 낭만적인 산책이 그들에게는 평생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담양=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여행정보(지역번호=061)

서울에서 죽녹원이 있는 담양읍으로 가려면 88고속도로 담양나들목을 이용하면 된다. 소쇄원을 가려면 호남고속도로 창평나들목이 편하다. 이후 광주 방면 60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887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소쇄원 방면으로 곧장 가면 된다. 소쇄원을 기준으로 담양 방면으로는 명옥헌원림이, 화순 방면으로는 독수정원림이 자리 잡고 있다. 숙박은 죽녹원 안 죽향문화마을(380-2680) 한옥에서 가능하다. 온천과 호텔로 이루어진 담양리조트(380-5000)도 편안하다. 모텔은 담양읍 시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담양은 떡갈비와 대통밥이 유명한 곳으로 곳곳에 맛집이 많다. 떡갈비집 중에는 신식당(382-9901)과 덕인관(381-2194)의 이름이 높다. 소쇄원 바로 옆 절라도식당(381-4744)에서는 떡갈비와 20가지가 넘는 제철반찬이 함께 나오는 떡갈비정식을 즐길 수 있다. 대통밥은 죽림원가든(383-1292)을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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