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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66조원, 강물처럼 흘러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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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19 21:01:06 수정 : 2015-03-19 21: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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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문제에 엉뚱한 처방 내놓은 리콴유와 쿵웨이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나라 대한민국은 비웃을 자격 있을까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 초대 총리가 폐렴 증세로 위독하다고 한다. 미국 CNN과 중국 CCTV 등이 그제 ‘사망 오보’ 소동을 치렀을 정도다. 앞서 지난주엔 공자의 78대 적손이자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인 쿵웨이커(孔維克)가 국가 진로를 정하는 3월 양회(전인대·정협)에서 돌출 발언을 해 뉴스를 탔다. 리와 쿵, 두 사람은 공통점이 있다. 저출산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면 대응했다는 점이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처방으로 망신살을 자초한 점도 판박이다.

먼저, 리콴유다. 그는 1983년 8월 국정연설을 통해 ‘결혼 대논쟁’을 불렀다. 그가 부르짖은 것은 고학력층의 결혼 활성화였다. 싱가포르 영자지 더스트레이츠타임스는 당시 이렇게 전했다. “총리는 고학력자들이 더 많은 아이를 낳지 않으면 25년 내에 국가의 인적 자원이 고갈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국정연설은 말잔치로 끝나지 않았다. 법제적, 정책적 처방으로 이어졌다. 가족계획국부터 ‘두 자녀’ 캠페인을 뒤집었다. 고학력자에게만 혜택을 준 차별적 조치였다. 그런데, 리콴유는 왜 그런 발상을 했을까. 고학력자의 출산 기피 경향이 드러난 80년 합계출산율 때문이었다고 한다. 국정연설에서 이렇게 개탄했다. “대졸자 두 명이 25년 만에 한 명의 대졸자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데 반해 교육받지 않은 노동자 두 명은 세 명을 재생산한다면, 능력의 저하를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

중국 쿵웨이커의 발언도 리콴유에 못지않다. 엽기적 수준에 가깝다. 요약하자면, 부부 중 한 명이 박사일 경우 출산 제한 없이 세 자녀 이상을 낳도록 하고 우수 인재 자녀는 국가 보조금을 받도록 하자고 했다. 리와 쿵의 발언 사이에는 32년의 간격이 있다. 하지만 내용은 오십보백보다. 아인슈타인 말마따나 인간의 어리석음에는 끝이 없다.

과학 상식만 좀 있다면, 두 사람이 어떤 함정에 빠졌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우생학의 함정이다. 우수한 성적이나 성공은 대체로 교육의 결과일 뿐, 유전적 결과로 단정할 수 없다. 리콴유도 그랬지만 쿵웨이커도 원인과 결과를 뒤섞어 발이 꼬였다. 미국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결혼 대논쟁’ 때 “학교에 다닌 햇수로 유전적 지능을 추론하려는 시도보다 더 어리석고 독선적인 것은 없다”면서 비판의 날을 세웠다. 공자의 적손도 쓴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이 시행 혹은 제안한 정책은? 100% 엉터리다.

이승현 논설위원
현재 대한민국엔 리콴유나 쿵웨이커가 없다. 황당한 발상이 횡행할 여지 또한 적다. 다행이다. 하지만 저출산 문제는 외려 더 심각하다. 국내 합계출산율은 2003년 1.180명, 2013년 1.187명이다. 개전의 정조차 없는 셈이다. 첫 아기를 낳는 초산 연령은 2011년 처음 30세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 된 데 이어 매년 0.2년꼴로 높아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건 다행과 거리가 멀다.

정부는 2006년 이후 66조원의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부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것일까. 그 많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삼식 박사는 “2006년 이후 1·2차 저출산 대책 기간 동안 많은 투자를 했지만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사망 판정’이었다. 우리 법제적, 정책적 처방이야말로 100% 엉터리인 것은 아닌지 정색을 하고 돌아볼 때가 됐다.

리콴유에게 충격을 준 80년 통계는 우리 눈으로 보면 별 게 아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은 평균 3.5명을 낳고 고학력 여성은 1.65명을 낳는다는 통계였으니까. 대한민국 통계는 그에 견줄 수 없이 열악하다. 그런데도 다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둔감을 넘어 무념무상의 경지다. 다들 해탈을 눈앞에 둔 것일까. 정부 대책에도 사실 큰 관심이 없다. 이러니 부실 대책이 그대로 집행되는 것이다. 66조원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도 관심 밖이다.

이제 겸허히 자문해 보자. 리콴유와 쿵웨이커, 그리고 대한민국. 이 중 어느 쪽이 더 엉터리인가. 더 혹독히 비난받아 마땅한가.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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