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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미의 ‘짜이 한잔’] 한 계단 한 계단 신에게 더 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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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26 19:25:52 수정 : 2015-03-26 21: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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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라싸 ‘높은 땅 위엔 더 높은 믿음이’
포탈라궁 위에서 본 라싸는 평지처럼 보이지만 해발고도가 3600m나 된다.
티베트 라싸는 해발고도 3600m에 세워진 도시다. ‘신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름답게 종교와 믿음이 가득하다. 그 높은 곳에 평지가 있고, 산에서 살던 사람들은 그곳에 자리 잡았다. 여기에 그들의 정신적 지주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면서 티베트 불교와 티베트 역사가 만들어졌다.

종교가 곧 삶인 티베트 사람들은 포탈라궁이라는 사원을 짓고 삶의 터전을 만듦과 동시에 믿음을 시작했다. 높은 곳에 있는 도시지만 해발고도가 그렇게 높다고 생각되지 않는 이유는 주변에 보이는 산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곳은 분지 지역으로 농업이 가능하다. 척박해서 아무것도 없을 것 같지만 풀이 자라고 물이 흐른다. 이것만으로도 사람이 살기에는 충분하다. 겨울에도 다른 티베트 지역보다는 훨씬 따뜻하다. 하지만 처음 도착한 라싸는 춥고 싸늘하기만 했다.
새벽부터 조캉사원 앞에서 절하는 티베트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경건해졌다.

라싸에서는 아침이 일찍 시작된다. 오전 4시쯤에는 일어나 조캉사원으로 향한다. 조캉사원은 티베트 불교사원 중 하나로 새벽부터 절을 하고 ‘마니차’를 돌리는 사람들로 붐빈다. 마니차(마니통, 마니코르)는 티베트불교 경전을 넣어 만든 전경통(轉經筒)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돌리는 행위만으로 경전을 읽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문맹률이 높았기 때문에 이런 믿음이 필요했다. 가장 흔하게 보는 장면이 작은 마니차를 돌리면서 다니는 사람들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마니차를 돌리는 것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고 믿는다.
해가 뜨지 않아 어둡기만 한 새벽 4시에 이들은 왜 일어날까. 중국은 여러 민족을 소수민족이라는 말로 묶어 놓고는 그 넓은 땅에서 하나의 시간대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이 라싸에서는 아침이다. 진짜로 흐르는 시간과 숫자를 나타내는 시간이 다르다. 어떤 시간이건 이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시간과 종교를 뛰어넘는 믿음이 중요할 뿐이다. 
라싸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 모습.

라싸는 중국 시짱자치구로 분류되고 티베트족은 짱족이라고 불린다. 티베트는 아직도 독립을 위해 노력 중이다. 달라이 라마가 원하는 평화적인 비폭력 독립을 위해서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그들의 뜻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도 마니차를 돌리면서 기원했다. 티베트 불교에서 현세는 전생의 속죄와 후생을 위한 고행이다. 왜 고통을 자처하느냐는 물음은 불필요하다. 이들의 고행을 보는 순간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고 믿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아직 어둡기만 한 새벽에 끊임없이 절을 하기도 하고 사원을 돌기도 한다. 이런 종교 행위는 시계 방향으로만 이뤄진다. 사람들이 걷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자세히 보면 시계 방향으로 사원을 돌면서 경전을 읽는 행위일 때가 많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쉬지 않고 움직이는 그 순간 차가운 공기에 숨을 불어넣듯 마음이 따뜻해졌다.
예쁜 천으로 만든 티베트 사람들 복장은 따뜻해 보인다.

마침 어느 식당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음식 냄새가 풍겨왔다.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가서 밥과 만두를 시켰다. 끓인 밥과 죽의 중간쯤 되는 음식을 가져왔다. 아침으로 먹기엔 부담 없고 괜찮았다. 만두는 만두소가 적고 만두피가 두꺼워 맛이 없을 것 같았지만, 막상 배가 고파서 그런지 먹을 만했다. 식당에서 나오니 서서히 날이 밝기 시작했다. 저 아래 땅 어디선가 해가 떠올랐다. 빛이 비쳐 오니 모든 것이 선명히 보였다. 사람들이 입은 색색이 장식된 옷들도 볼 수 있었다. 마니차는 황금색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나온 김에 포탈라궁으로 향해본다. 포탈라궁은 역대 달라이 라마의 거주지이자, 티베트의 대표 상징물이다. 이름은 관음보살이 사는 산이라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다. 티베트에서는 모든 단어가 종교와 관련돼 있고, 모든 삶이 종교와 일치한다. 광장에서 보이는 포탈라궁은 티베트의 산과 닮았다. 산처럼 거대하고 메말라 있다. 정면에서도 보이는 계단은 아슬아슬하게 나 있는 산길처럼 보인다. 고산증을 겪는 여행객이 오르기는 쉽지 않다. 계단을 오르는 일마저 고행으로 느껴진다. 한 계단 한 계단 발을 디딜 때마다 숨이 차오른다. 티베트에 와서 안 그래도 산소가 부족한 느낌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는데, 포탈라궁 계단을 오르니 산소가 더 심각하게 모자랐다. 이들이 이렇게 높은 곳에서 더 높은 곳까지 이르는 이유는 하늘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함일 것이다. 
거대한 산과 같은 포탈라궁은 티베트 불교에선 성스러운 장소다.

포탈라궁에는 붉은색과 흰색으로 된 방이 1000여개 있다고 한다. 붉은 방은 종교업무를 관장하는 곳이고, 하얗게 칠한 방은 티베트 불교의 스승인 라마의 생활공간이다. 이 거대한 건물이 완성되기까지는 몇 세대의 달라이 라마가 존재했다. 수백년 동안 건축을 했을 만큼 오래 걸렸고 그만큼 위대하다. 계단을 올라 정신이 몽롱해진 순간 포탈라궁에 사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붉은색 승복을 입은 수도승 옆에서 곤히 잠든 고양이였다. 고양이가 깰까봐 조용히 해야 한다는 수도승 말에 더 숙연해졌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때문에 시끄러워진 포탈라궁이지만, 그래도 신성한 사원이다. 이들의 믿음을 존중해줘야 한다.
간혹 기계로 돈을 세는 라마들을 볼 때도 있지만 실망하진 않았다. 포탈라궁 광장에 깊숙이 꽂혀 있는 붉은 국기를 보면서 아픈 현실을 직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라싸의 모습이 변해가도 티베트 사람들은 여전히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상상했던 티베트 모습을 보고 싶다면 라싸를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 가까운 곳은 새벽 버스를 타고 갔다 올 수 있다. 하지만 겨울이라서 중단된 버스 노선이 많았다. 차를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차를 빌리기 위해서는 비용 부담이 상당하므로 같이 탈 여행객을 찾아야만 했다. 게스트하우스 게시판에 메모를 붙여놓으면 사람들이 보고 직원에게 메모를 남겨 놓는다. 나는 도미토리를 이용하고 있어서 6번 방과 이름을 붙여놓았다. 그렇게 팀을 모으는 시간과 차를 찾는 시간이 며칠 걸렸다. 그 시간 동안 매일 포탈라궁 광장도 가고, 박물관도 구경하고, 끊임없이 다녔다. 이제 슬슬 라싸를 벗어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했다.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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