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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어린 왕의 한맺힌 눈물… 지금도 비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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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26 19:25:09 수정 : 2015-03-26 19: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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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 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영월은 단종이 1457년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긴 후 유배의 형을 받고 내려온 곳이다. 유배지에서 단종은 이렇게 시작하는 시를 지었다. 아직 세상이 무엇인지도 모를 나이인 17세 소년이 지은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과 슬픔이 절절한 시구다.
 
도대체 정치가 무엇이기에, 권력이 무엇이기에 어린 소년 입에서 ‘한 마리 원한 맺힌 새’라는 표현이 나올까. 영월에서 만나는 단종 이야기는 그래서 더 서글프고 애처롭다. 이런 감정을 가장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청령포다. 이곳은 영월의 또 다른 젖줄인 서강이 동서와 북쪽으로 삼면을 휘돌아 나가고, 남쪽은 국지산의 험한 절벽이 가로막고 있다. 천혜의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서강 위에 떠 있는 섬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섬 곳곳에 단종의 슬픈 이야기가 서려있다.

사정을 모르는 여행객이라면 아름다운 강물과 기암괴석이 만들어내는 한 폭의 산수화 같은 풍경에 경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종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에 청령포 여행은 경치에 대한 감탄보다는 숙연함으로 이어진다. 권력과 인생의 허망함도 느끼며 하는 여정이다. 마침 청령포를 찾은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어린 임금의 눈물이 비로 내리는 듯싶어 자꾸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청령포에 복원돼 있는 단종어가. 단종이 살았던 곳이다.

단종의 발길이 닿은 지 500여년이 지났지만 청령포는 여전히 뱃길로 가야 한다. 맞은편 나루터에서 5분 남짓 배를 타야 도착한다. 단종이 살았던 집과 거닐던 소나무숲은 그 시대 모습으로 복원돼 있다. 
청령포 관음송. 단종이 갈라진 나무 사이에 걸터앉아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다.

섬 여기저기에는 단종 이야기가 서린 곳이 많다. 단종이 걸터앉아 매일 울부짖었다는 소나무는 후대 사람들이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무가 임금의 슬픈 모습을 매일 보고 들었다는 뜻이다. 관음송은 시간의 흐름만큼 아름드리 나무로 자랐다. 세월의 무상함이 절로 느껴진다. 단종이 매일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을 달랜 절벽에는 어머니와 아내를 그리며 쌓았다는 망향탑이 남아 있다. 작은 돌탑에서 느껴지는 그리움이 돌덩이만큼 무겁다. 
단종이 어머니와 아내를 그리며 쌓았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는 망향탑.

영월시내에 남아있는 관풍헌. 청령포를 나온 단종이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곳이다.
청령포에서의 그의 삶은 두 달에 불과했다. 그해 큰 홍수가 나면서 단종은 영월 동헌 객사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긴다. 그곳에서 두 달을 더 기거한 후 17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단종이 마지막으로 머무른 관풍헌은 영월읍내에 보존돼 있다. 슬쩍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스산함이 밀려든다. 죽음의 현장을 마주하는 것은 역시 가슴 아픈 일이다.
단종이 잠들어있는 장릉.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조선왕릉 40기 중 유일하게 서울·경기지역 외에 있는 곳이다. 정식 왕릉임에도 매우 소박하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단종이 영원히 잠든 장릉이다. 영월읍내에서 차로 5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다. 바쁘지 않다면 걸어도 충분하다. 장릉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엄흥도다. 단종은 죽은 뒤 서강과 동강이 만나는 강변에 버려졌다. 역적의 죄를 쓰고 죽었으니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그때 용감히 나선 이가 호장 엄흥도다.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며 왕의 시신을 몰래 거둔 엄흥도는 단종을 몰래 묻고 밤마다 문안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숙종 때인 1698년에 이르러 단종이 복위되자 엄흥도가 몰래 만든 무덤은 조선왕조 왕릉이 됐다.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 40기의 능 가운데 서울과 경기도에 있지 않은 것은 장릉이 유일하다. 500여년 전 엄흥도는 이런 미래를 예견했을까. 강원도의 평범한 한 고장에 불과했을지 모를 영월을 어린 왕의 슬픈 야사로 물들인 한 사내의 이야기로 가슴이 저릿해진다.

◆4월에 만날 수 있는 49번째 영월단종제

엄흥도가 그랬던 것처럼 영월 사람들은 지금도 단종의 혼을 위로한다. 영월에서 매년 열리는 단종제는 단종과 충신들의 넋을 기리는 행사로 장릉과 청령포 등에서 진행된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참사로 단종제향 등 일부 행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행사가 축소 또는 취소됐지만 올해엔 예년과 같은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돼 있다. 다음달 24∼26일 사흘간 열리는 49번째 영월단종제에서는 왕의 혼령을 위로하는 대왕신령굿을 시작으로 유교 제례의식인 단종제향, 제례악, 국장 등이 장릉에서 열린다. 동강둔치와 영월읍내에서는 왕의 행차인 산릉어가행렬, 풍년을 기원하는 칡줄행렬뿐 아니라 전통혼례, 지역예술인 공연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개최된다.

영월=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 여행정보(지역번호=033)

영월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중앙고속도로 제천나들목에서 나와 38번 국도를 타고 영월읍까지 가면 된다. 영월읍내 인근에서 장릉, 관풍헌 등 단종 관련 유적지를 만날 수 있다. 청령포도 10여분이면 도착한다. 동강할미꽃을 만나기 위해서는 38번국도를 계속 달리다 중간에 차를 북쪽 어라연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래프팅의 종점인 거운리 등을 지나면 문산리에 도착할 수 있다. 영월읍내에서 30여분이면 도달할 거리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기차와 시외버스를 이용해 영월역과 영월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린 후 문산리마을 입구로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버스는 2∼3시간 간격으로 하루 5회만 운행하므로 영월에 도착해 미리 버스시간을 확인한 뒤 영월읍내 관광을 즐기는 게 좋다. 숙박할 곳으로는 문산리 가는 길에 들를 수 있는 동강시스타리조트(905-2000)가 있다. 가족과 편안한 휴식을 즐기기 적합한 곳이다. 가볍게 숙박만 하고 싶은 여행자들은 영월읍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영흥리 인근에서 모텔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영월은 강원도의 맛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고장이다. 영월읍내의 김인수할머니순두부(375-3698)와 장릉보리밥집(374-3986)은 강원도 특산 콩과 보리로 만든 음식과 산골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10여가지 반찬을 내는 맛집들이다. 주천면의 주천묵집(372-3800)에서는 직접 쑨 메밀묵과 도토리묵을 맛볼 수 있다. 전국적으로 입소문이 나 먼 곳에서부터 손님이 찾아오는 일미닭강정(374-0151)도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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