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설왕설래] 일그러진 영웅

관련이슈 설왕설래

입력 : 2015-03-26 20:55:26 수정 : 2015-03-26 20:55:2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우리는 그를 영웅으로 칭송했다. 그가 가는 곳엔 으레 팬들로 북적였다. 태릉선수촌 정문에는 그의 얼굴을 보러온 중·고교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40∼50대 아줌마 팬들도 있었다. ‘마린보이’ 박태환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에 수영 첫 금메달을 안긴 뒤 생겨난 태릉의 풍경이었다.

박태환은 한국 수영의 판을 바꿨다. 베이징 올림픽 이전만 해도 한국 수영은 초라했다. 선수층은 두껍지 못했고, 수영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크지 않았던 탓이다. 박태환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메달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에도 대다수 국민은 ‘설마’ 했다.

2008년 8월10일, 대한민국 수영계가 발칵 뒤집힌 날이다. 오전 11시 20분, 베이징 내셔널 아쿠아틱 센터. “죽을 힘을 다해 레이스를 펼치겠다”는 그의 말대로 박태환은 정말 죽을 힘을 다했다. 3분41초86.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찍었다. 올림픽 첫 메달, 그것도 금색이었다. “해냈어 해냈어, 박태환이가.” TV 해설자는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혔다.

박태환은 축구의 박지성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스타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따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은메달 두 개를 더 보탰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메달을 무려 6개나 목에 걸었다. 메달 수만 놓고 보더라도 박태환은 스포츠 스타 중 으뜸이다.

박태환이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근육강화제를 복용한 혐의로 1년6개월의 자격정지를 받아 차기 올림픽 출전 길이 열렸다. 불행 중 다행이다. 문제는 체육회 규정이다. 체육회 국가대표 선발규정에 따르면 박태환은 FINA 징계에서 해제돼도 다시 3년이 지나야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 규정대로라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다.

논란이 많다. ‘국민오빠, 국민동생’인데 한 번의 실수는 넘어갈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동정론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박태환만 봐줄 수 있을까. 선례도 있다. 스포츠를 ‘룰의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금지 약물로 경기력을 키우는 꼼수 중의 꼼수 도핑, 설령 고의가 아닐지라도 두고두고 주홍글씨로 남을 수밖에 없다. 박태환이 앞으로도 우리의 영웅으로 남을 수 있을까. ‘일그러진 영웅’으로 남는 것은 아닐까. 베이징의 영웅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진다.

옥영대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