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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오바마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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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29 20:57:18 수정 : 2015-03-29 20: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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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아베와 손잡고 中 포위전략 가속화
과거사 덮은 지 오래… 한국외교 중대 시험대
언뜻 보면 참으로 기묘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 조합 얘기다. 오바마는 미국 대통령사에서 진보적인 색깔이 가장 두드러진 대통령 중의 한 명이다. 아베는 극우 성향의 국수주의자이고, 역사 수정주의자이다. 이런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동북아 질서 새판짜기 작업에 나서고 있다. 다음달 26일 시작되는 아베 총리의 사실상 미국 국빈 방문은 미·일 신밀월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아베는 내달 29일 일본 총리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미 상하원 합동 연설에 나선다. 미국 정부가 아베의 의회 연설은 어디까지나 의회가 결정한 일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게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베에게 레드 카펫을 손수 깔아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오바마이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한국은 아베의 미국 방문과 의회 연설을 놓고 그의 과거사 인식 문제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아베의 미 의회 연설에 대해 “일본 정부가 그간 누차 공언한 대로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변함없이 계승하고,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성찰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베의 과거사 부인 행보로 인한 한·일 간의 갈등 문제를 오바마 대통령 또는 미국 정부가 나서서 중재해 달라는 뜻을 미국 조야에 누차에 걸쳐 전했다.

아베의 과거사 망언으로 깊은 내상을 입은 한국의 이런 대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 전략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지금 나무만 볼 뿐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오바마와 아베가 이미 과거사를 훌훌 털어버리고, 저 멀리 미래로 내리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국무부 내 서열 3위인 웬디 셔먼 정무차관이 이달 초 한국이 들으라는 듯이 “과거사는 한국, 중국, 일본이 모두 책임이 있으니까 빨리 정리하고, 북핵과 같은 당면 현안에 치중하자”고 했다.

미국이 현재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과격 세력과 싸우고 있지만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뭐니 뭐니 해도 국제사회의 공룡으로 커가는 중국이다. 냉전 이후 유일 초강대국 지위를 누렸던 미국은 21세기를 맞아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미국은 지구상의 그 어떤 나라와도 다르다는 ‘미국 예외주의’는 역사의 유물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바로 이런 시점에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중국 예외주의’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다.

이제 중국을 견제하는 게 미국의 최고 외교 목표이다. 오바마가 표방한 ‘아시아 중심축 이동’ 전략의 포장을 벗겨내면 중국 포위 전략과 다름없다. 미국은 중국을 억누르고 싶지만 힘이 달린다. 그 부족한 부분을 어느 나라가 메워 주면 좋겠다는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런 역할을 할 최고의 국가가 동북아에서 중국의 인접국이자 최대 라이벌인 일본이다. 때맞춰 일본에서 아베가 등장해 ‘강한 일본’을 표방하면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정상 국가로 변모해 가려 하고, 자위대의 해외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제임스 쇼트 케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 연구원은 “오바마 정부의 미·일 협력 목표는 중국에 위협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아태지역에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클 오스린 미 기업연구소(AEI) 선임 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불안감과 불확실성을 해소하려고 미국이 일본의 군사력 증대와 역할 확대 조치를 지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와 아베가 중국 포위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걸림돌이 될 리 만무하다. 한국이 미국에 볼멘소리를 해보았자 효과가 별로 없다. 미국은 오로지 한국, 미국, 일본이 3각 동맹 체제를 굳건히 유지해 나가자고 딴소리만 할 뿐이다. 오바마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다. 한국은 이런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일 간 과거사 문제를 미국에 아웃소싱하려 들지 말고, 한·일 간 직접 대화를 통해 매듭지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 안보팀은 지금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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