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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구두닦이 ‘긴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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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30 21:19:11 수정 : 2015-03-31 15:4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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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계 최고의 구두닦이다. 이름이 있지만 그냥 ‘구두닦이 긴짱’으로 통한다. 일본 도쿄의 최고급 데이코쿠(帝國) 호텔의 맨 구석 자리가 그의 42년 일터다.

보잘것없는 구두닦이 노인에게는 그를 알아보는 거인이 있었다. 얼마 전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그에게서 인생을 배웠다고 한다. 21년 전 처음 찾아온 리콴유는 마음을 담아 구두를 닦는 그의 태도에서 무한한 감동을 느꼈다. 이후 리콴유는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꼭 이곳에 들러 구두를 닦았다. 긴짱은 여러 나라에 단골고객을 둔 유명인사다. 일본 출장을 기다려 신발장의 구두를 모조리 싸오는 미국 단골이 있을 정도다.

호텔 구석을 꿋꿋이 지킨 긴짱은 일본 장인정신의 표상이다. 일본은 대를 이어 고유의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는 전통이 있다. 장수 기업도 유난히 많다. 지구상에 1000년이 넘는 기업은 8개뿐이다. 그중 7개가 일본이고 나머지 한 곳은 독일이다. 국토와 인구에서 그다지 크지 않은 두 나라가 세계 시장을 주름잡는 것도 우연의 산물일 수만은 없다.

싱가포르의 국부가 구두닦이 노인을 찾은 까닭은 개인적인 친분 때문은 아닐 터이다. 아마 그의 모습에서 강대국 일본의 정신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으리라. 리콴유는 회고록에 긴짱의 얘기를 썼다. “지금껏 본 적이 없을 만큼 구두를 말끔히 닦았다. 일본인은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뭔가 할 때 자기 능력의 최대한까지 한다. 그것이 일본의 성공을 이끌었다.” 국부는 생전에 일본인의 근면을 배우라고 국민을 독려했다. 일본 지배의 아픔을 지닌 싱가포르의 극일 방식이었다.

리콴유의 바람은 현실로 이뤄졌다. 싱가포르는 8년 전 1인당 국민소득에서 일본을 추월했다. 싱가포르와 같은 식민의 아픔을 공유한 우리는 아직 반일에 머문다. 위안부 만행을 규탄하는 수요집회는 24년째를 이어온다. 그러면서도 정작 우리 스스로의 반성에는 느슨하다. 위안부 실상을 제대로 기술하지 않는 역사교과서마저 수두룩한 현실이다. 반일만 있고 극일은 없다.

구두닦이 긴짱은 “구두를 닦는 10분 동안은 세계 일류를 독점할 수 있다”고 했다.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노인에게서 일본의 저력을 본다. 구두는 결코 저절로 광(光)이 나지 않는다. 일본의 구두닦이 노인이 우리에게 또 숙제를 던졌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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