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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아홉 번째 개인전 여는 가수 나얼

입력 : 2015-04-06 21:23:43 수정 : 2015-04-06 21: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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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대중에 맞추지만 미술은 나를 더 깊게 표현할 수 있어” 영혼을 울리는 특유의 애절한 목소리가 듣는 이를 어쩔 줄 모르게 만든다. 이별을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귀를 기울이게 하는 소리다. 서글픈 멜로디와 절망적인 그리움은 전형적인 흑인음악의 블루스다. 사랑하는 이와 만나고 있는 듯한 기분좋은 흐름이 흐른다 싶다가도 아련한 추억으로 흘러간다.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멤버인 가수 나얼(38)은 그립다는 정서를 그렇게 짝사랑처럼 끌고 간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2004년 첫 번째 개인전을 연 이후 그간 꾸준히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를 가졌고 국내외 아트페어에도 참가했다. 그의 아홉 번째 개인전이 서울 통의동 진화랑에서 30일까지 열린다. 그림의 중심 화두도 그리움이다.

“예술은 짝사랑 같은 것이지요. 제가 완전히 가질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평생 쫓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술은 하면 할수록 어렵고 완벽한 완성이 있을 수 없지요.”

인간은 늘상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을 기억이나 추억의 파편들로 거느리고 산다. 작은 삶의 편린들은 그의 작품에서 콜라주가 되어 그리움이 된다. 

서울 보광동 작업실에서 한창 작업 중인 나얼. 그에게서 음악이 대중을 향한 것이라면, 미술은 좀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무수히 떠도는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현한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미대 입시를 준비했던 저는 장래 희망란에 늘 화가를 적어내곤 했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 아버지가 사다 준 음반을 통해 흑인 음악에 빠져들게 됐어요. 그러면서 음악은 현실의 탈출구이자 생활 그 자체가 됐죠.” 그는 입시를 위한 반복적인 석고 데생은 지루했지만 빌보드 싱글차트는 줄줄이 외울 정도였다. 수업시간에는 교복 소매 밖으로 이어폰을 빼 귀에 꽂았고, 한 손으로는 드로잉을 했다. 음악과 그림은 늘 한몸이었다. 미군부대가 있는 동두천까지 가서 흑인음악 음반을 사기도 했다. 이제 음반수집은 그의 취미가 됐다. 그동안 LP 3000장, CD 4000장을 모았다. 대부분 흑인음악이다.

그의 곡 ‘바람기억’이 머릿속을 맴돈다. ‘바람불어와 내 맘 흔들면 지나간 세월에 두 눈을 감아본다. 내 안에 숨쉬는 커버린 삶의 조각들이 날 부딪혀 지날 때 그곳을 바라보리라.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사랑 그 영원한 약속들을 나 추억한다면 힘차게 걸으리라, 미소를 띄우리라.’ 다름 아닌 그가 추구하는 예술세계다.

그는 드로잉과 오브제를 한 화면에 담아낸 콜라주 작업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오래된 흑백사진, 어머니가 보관해 둔 3∼4세 때 그렸다는 자신의 그림, 빛 바랜 가구, LP 케이스 등을 조합해 콜라주나 설치 작품으로 선보인다.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원본을 스캔해 재조합하기도 한다.

버려진 창문틀과 박스종이를 캔버스 삼아 드로잉한 ‘윈도 시리즈’. 창가 너머에서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제 작업은 애드립의 소화력을 높게 평가하는 1970년대 흑인 소울음악의 즉흥성을 닮았어요. 거칠고 빈티지스럽기까지 하지요. 그래서 모던하거나 깔끔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가 마구 오브제를 붙여가는 것 같지만 ‘고도의 심리적 계획’이 바탕에 깔려 있다고 했다. 오랜 세월 축적된 감성만이 힘있게 쏟아져 나올 수 있는 소울음악 같은 것이다.

그는 미술 장르로서 콜라주의 매력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라 했다.

“언제든지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한 소재들로 생각날 때마다 얹어보고 붙여볼 수 있어 좋아요. 무엇보다도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게 최고의 매력이지요.”

가수로 활동하는 그가 언제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했다. 시간도 많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대학동창이나 선배들의 전시회에 다녀오면 작업하고 싶은 욕구가 불처럼 솟아납니다. 그럴 땐 몸을 마음에 맡깁니다.” 그는 늘상 생활속에서 감성일기를 쓴다. 바로 작업의 모티브가 돼주는 드로잉이다. 생활과 작업이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앨범 재킷과 전시도록 디자인도 그렇게 손수 했다. 아트상품으로 휴대전화 케이스, 노트, 에코백도 내놨다.

그는 요즘도 대중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린다. 공연 이외에는 일체의 회동을 안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 그저 성격 탓이라 했다. 카메라에 클로즈업되는 것도, 주목받는 것도 싫어한다. 인물사진 찍는 것도 극구 사양해 그가 준비한 사진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위무하는 음악과 미술을 하고 싶어요.”

그는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작품 속 결혼식 장면에서 신부는 예수를 믿는 이들, 신랑은 예수, 결혼은 교회를 상징한다고 했다. 갓난아기는 예수를 믿으면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저는 기독교를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종교와 복음은 엄연히 다르지요. 많은 사람들이 새벽기도를 다니고 십일조를 내면서 ‘종교생활’을 한다고 하지요. 저는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믿는 거예요.” 그의 디지털프린트 작품은 에디션이 모두 37개다. 성서 속의 완벽한 수가 3과 7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서적인 함의를 지닌 작품들에 ‘에끌레시아(Ecclesia·교회)’, ‘하마르티아(Hamartia·죄)’ 등 헬라어 제목을 붙였다.

요즘 들어 적지 않은 연예인들이 그림을 그리고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는 연예인 전시로 뭉뚱그려지는 것엔 못마땅한 눈치다.

“저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습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본능 같은 것이었지요. 그것이 저에겐 창작이었습니다.”

그의 작품에선 사람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비록 버려진 오브제들의 콜라주이지만 사람들의 삶이 담겨져 있다.

“음악은 대중의 기호에 맞추지만, 미술작품은 대중의 어떤 반응에 따라 움직이지 않아서 자신의 표현이 깊어진다”며 애착을 드러냈다. 음악이 미술에 제약을 주지 않는다는 그는 미술가로서만 살았다고 해도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오랜 연인이었던 한혜진에 대해서도 언급을 삼갔다. 그게 그로선 최선의 ‘미학’인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뒷보습이 그리움의 여울이 된다. (02)738-7570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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