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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사람] "맨몸으로 키운 창작발레…이젠 세계로 진출 뿌듯"

입력 : 2015-04-14 20:43:45 수정 : 2015-04-15 13: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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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20돌 맞은 서울 발레시어터 만든 김인희 단장·제임스 전 예술 감독 부부 “믿어지지 않아요. 기적 같은 일이죠.”

서울발레시어터(SBT)가 올해 창단 20돌을 맞았다. 발레단을 만들고 키운 부부인 김인희 단장과 제임스 전 예술감독은 20주년이란 사실에 “말도 안 된다”고 되뇌었다. 함박웃음을 머금은 환한 표정이었다. 이 속에는 대견함, 뿌듯함과 함께 안타까움이 공존했다. 이들의 말대로 SBT가 20년간 지탱된 게 기적이기 때문이다.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오른쪽)과 제임스 전 예술감독은 “국내 무용계가 50년간 훌륭한 무용수를 키우는 데 집중해 성공했다”며 “이제는 무용단을 많이 만들어서 안무가, 지도자가 발굴돼야 건강한 무용 생태계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국내에서 고정급과 4대 보험을 제공하는 발레단은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광주시립무용단, SBT 네 곳에 불과하다. 이 중 세 곳은 국·시립이거나 종교재단의 지원을 받는다. SBT는 허허벌판을 맨몸으로 달려왔다. 공연 수익에 더해 약간의 시민 후원, 정부 지원금으로 겨우겨우 살림을 꾸렸다. 전 감독은 “무용 환경이 100배 나은 미국·유럽에서도 우리처럼 운영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1995년 2월 창단된 SBT는 20년 동안 두 해만 흑자를 봤다. 나머지 16년은 적자였고, 두 해는 겨우 손익분기점을 맞췄다. 20년 전 두 사람은 “민간발레단 운영이 말도 안 되는 소리인 줄 몰랐기에” 무모한 도전에 뛰어들었다.

“우리만의 창작발레를 하고 싶었어요. 신나게 시작했어요. 아기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세상 모르고 팔짝팔짝 뛰어노는 느낌이었죠.”

20년 전 이들은 무용수로 황금기를 보내고 있었다. 김 단장은 1980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했다. 한국에 와보니 화양시장에서 장사하던 부모님이 그의 학비를 대려 창문도 없는 무허가 집에서 살고 있었다. 바로 유니버설발레단 창단무용수로 일했다. 연습이 끝나면 저녁도 못 먹고 몇 분 만에 학원으로 달려갔다. 재미동포인 전 감독은 미국 줄리아드대를 졸업했다. 플로리다발레단에서 활동하던 그는 1987년 유니버설발레단에 객원으로 왔다가 김 단장을 만났다. 부부의 연을 맺은 이들은 1994년 나란히 국립발레단 주역이 됐다.

서울발레시어터 ‘레노스’
“그때가 좋았지. 춤 잘 춘다고 칭찬 받아, 인기 있어. 제가 SBT 만들 때 은행예금이 십몇만달러나 있었어요. 발레단 시작하고 1년 만에 다 없어졌어요. 아파트까지 말아먹었죠. 후회는 안 해요.”(전 감독)

발레단은 주기적으로 고비를 맞았다. 그때마다 재산을 헐고, 여기저기 대출을 받았다. 그러고도 모자라 가끔 단원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예술 자체가 본질적으로 수익을 내기 힘든데, 시장 규모까지 작은 국내에서 민간발레단을 운영하려니 고생이 말도 못했다. 그럼에도 SBT는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왔다. 두 사람이 SBT를 만들면서 꾼 꿈은 두 가지다. 창작발레를 대중화하고, 우리가 만든 발레를 외국에 팔고 싶었다. 다른 발레단이 ‘백조의 호수’와 ‘지젤’에 주력할 때 이들은 록음악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모던 창작발레를 선보였다. 약 100편을 만들었다. 2001년 로열티를 받고 미국 발레단에 ‘생명의 선’을 판 것을 시작으로 여러 작품을 수출했다.

SBT는 20돌을 축하하려 올해 특별공연을 한다. 6월 5∼6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창작발레 ‘레이지’를 재공연하고, 8월6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한 여름 밤의 꿈’을 초연한다. 10월 1∼2일에는 국립극장에서 스위스 바젤발레단과 합작 공연 ‘무브스’를 올린다. 두 발레단은 올해 한국, 내년 스위스에서 번갈아 공연한다. 같은 달 22∼23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20주년 기념공연 ‘빙’(BEING)을 선보인다.

아이를 갖는 대신 발레단을 만든 이들에게 SBT는 자식이나 다름없다. 실제 전 감독은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심사를 받으면서 “우리 아이 대학에 보내야 하니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다 큰 자식을 떠나보내듯, 두 사람은 20주년 되는 해 일선에서 물러날 계획이었다. 전 감독은 “나초 두아토, 지리 킬리언이 그랬듯 모든 예술단체는 20년쯤 되면 예술적으로 물갈이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은 ‘일선 은퇴’ 계획을 내년으로 미뤘다. SBT 재정 기반이 아직 탄탄하지 못해서다. 여전히 민간발레단이 살아남기 힘든 현실은 이들을 착잡하게 한다. 전 감독은 “미국·유럽에서는 숱한 안무가, 예술가를 접하니 청소년들이 자연스레 꿈을 갖는다”며 “우리는 젊은이들이 창작이든 창업이든 ‘내 것’을 하고 싶어하기보다 ‘힘들게 왜 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오른쪽)과 제임스 전 예술감독은 “국내 무용계가 50년간 훌륭한 무용수를 키우는 데 집중해 성공했다”며 “이제는 무용단을 많이 만들어서 안무가, 지도자가 발굴돼야 건강한 무용 생태계가 만들어진다”고 강조했다.
서울발레시어터 제공
“지금 안무가의 꿈을 키우는 젊은이가 드물어요. 안무해서는 돈을 못 버니까요. 훌륭한 안무가가 나오려면 무용단을 키워야 하는데, 현재 정부의 안무가 육성 지원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예요.”(김 단장)

“청년 취업률이 문제라는데, 단체가 있어야 취업이 되죠.”(전 감독)

이들은 정부의 ‘소액다건식 지원’ 정책이 문제라고 꼬집는다. 매월 급여를 주는 프로 단체든, 급조된 아마추어 단체든 정부 지원금은 엇비슷하다. 골 아프게 무용단을 운영하느니 필요할 때 프리랜서를 고용하는 것이 수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무용단이 없으면 안무가의 작품이 지속적으로 쌓이고 발전되기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무용인들의 고용 불안정도 뒤따른다. 후배 무용인들이 SBT를 주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열매를 맺어줘야죠. 기대를 잔뜩 받고 물러서면 선배로서 말도 안 되는 거죠. 이런 문제가 많았는데 너희는 이런 해법을 얻을 수 있으라고 제시해야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열심히 해야죠.”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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