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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의법률산책] 황당한 농지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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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14 21:12:42 수정 : 2015-04-14 21: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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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를 통해 부동산을 취득할 때는 주의해야 할 것이 많다. 등기부에 나타나지 않는 유치권, 법정지상권, 분묘기지권 등으로 낭패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농지경매에서는 농지취득자격증명이라는 복병을 조심해야 한다. 원래 농지를 매수해 이전등기하려면 소재지 관서의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경매에서는 최고가매수인이 매각대금을 다 내면 이전등기 전이라도 소유권을 취득한다. 그래서 법원에서 농지매각 공고를 낼 때는 대개 ‘농지취득자격증명원 제출요함(미제출시 보증금을 몰수함)’을 매각조건으로 한다.

실례로 갑이 농협에서 대출을 받으며 농지에 저당권을 설정해 줬다. 갑이 대출금을 갚지 않자, 농협은 농지경매를 신청했다. 법원은 매각공고를 내면서 최고가매수신고인은 매각결정기일까지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제출하라는 매각조건을 달았다. 그리고 을이 최고가매수신고를 했는데 자신은 법에서 정한 자격요건을 충족하니 증명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을이 농지소재지 면사무소에 증명발급 신청을 했으나 면장은 ‘토지 중에서 불법으로 형질변경된 부분에 대한 복구가 필요하고, 현 상태에서는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을은 황당했다. 아직 소유자가 아닌데, 무슨 권리로 복구공사를 한단 말인가. 부동산중개사에게 물으니 반려통보서를 법원에 제출하면 매각허가결정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했더니 법원은 을에게 매각허가결정을 해 줬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채무자 갑이 항고했다. 다행히 법원은 갑의 항고를 기각했다. 그러나 갑이 다시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했는데 이번에는 결정이 뒤집혔다. 대법원의 설명은 의외로 간단했다. 농지취득자격증명 제출을 특별매각조건으로 한 경매에서 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하면, 집행법원으로서는 민사집행법에 따라 매각불허가결정을 해야 한다. 이 사건처럼 최고가매수신고인이 증명서 발급에 필요한 모든 요건을 갖추었음에도 행정청이 위법하게 발급을 거부해 그 처분이 취소될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을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행정부, 사법부 다 국가기관인데 한 쪽에서는 위법하게 증명발급을 거부하고, 다른 쪽에서는 증명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매각허가를 거부하니 말이다.

을의 하소연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하지만 대법원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법령에 따라 신속하게 진행해야 하는 경매절차에서 법원이 증명발급 거부처분의 위법성을 세세히 따지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또 특별매각조건이 붙어 있었으니 매수희망자가 매각절차 참여 전에 증명발급이 가능한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고가신고인이 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미리 증명발급에 대해 문의하라는 것은 전형적인 관 중심적인 사고로 사법서비스와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대법원 결정에 따르면 고의적인 형질변경에 의한 매각방해를 막을 수 없다. 그러면 채권자인 농협이 피해를 입고, 이는 농협 부실화를 가져와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본다. 제도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아무튼 현재는 농지경매의 경우 증명발급이 가능한지 확인하지 않은 채 보증금을 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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