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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남해 보리암

입력 : 2015-04-18 10:26:10 수정 : 2015-04-23 21: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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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절벽 위의 천년고찰, 관음보살의 미소에 평온함이…
힘들고 지칠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존재가 어머니다.
어떤 때는 차마 털어놓지 못할 고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아이 때 그랬던 것처럼 칭얼대기도 한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만으로도 삶의 무게에 지친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된다. 관음보살은 유독 이런 어머니 이미지를 많이 가진 존재다. 지친 민중들은 관음의 이름을 되뇌며 삶의 고단함을 이겨냈다.
남해 보리암은 관음성지로 이름난 곳이다. 대자대비한 관음보살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원래 사찰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곳이지만 민초들의 사랑으로 관음보살을 모시는 사찰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 중 명성을 떨치는 곳이 양양 낙산사,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 등이다. 
어머니 관음이 사는 곳이라서일까. 관음보살을 모시는 곳들은 엄숙하기보다는 따뜻하다. 고향집 같은 포근함 속에 그곳을 찾은 사람들은 소원을 빌며 칭얼대고, 한껏 휴식을 취하기도하면서 위로를 받는다.
보리암은 금산 정상 인근 깎아지른 듯한 절벽, 남해바다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남해에도 관음성지로 명성을 떨치는 곳이 있다. 바로 보리암이다. 남해군의 대표적 명산인 금산 정상 부근에 자리 잡고 있다. 관음성지로 이름을 떨치는 다른 사찰들처럼 보리암도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민중들은 관음보살이 천축국 낙가산 바닷가 굴에 살았다고 믿었다. 친정 같은 편안한 곳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바다 기운이 가까운 곳에 관음성지를 지었다. 그 편안함 속에 삶에 지친 사람들도 들어가 함께 쉴 수 있다.

이제는 그곳에 가기도 쉽다. 보리암과 인접한 곳까지 자동차가 들어가는 까닭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금산 입구부터 수시로 운행하는 사찰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차에서 내린 후 금산의 수려함과 맑은 공기를 느끼며 10여분만 걸으면 보리암이다. 산 정상 봉수대까지 10분이면 도착할 거리에 사찰이 있다. 산꼭대기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사찰이지만 마치 옆집 절을 구경가듯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금산 정상의 봉수대. 보리암에서 10여분이면 도착한다.

보리암에 도착하면 수려한 금산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절집의 위용에 놀라게 된다. ‘어떻게 이런 곳에 절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라는 의문이 절로 드는 광경이다. 이 절이 창건된 이야기는 13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 신문왕 3년인 서기 683년 원효대사가 초당을 짓고 수도하다 관음보살을 만난 뒤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으로 하고 보광사라는 절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려 말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열었는데 이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산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쓴 금산(錦山)으로 바꿨다. 현종 때는 보광사 대신 새로 절을 지어 이름을 보리암으로 한 후 왕족의 명복이나 현세를 축원하기 위한 절인 원당으로 삼았다. 1300여년의 긴 역사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가 담긴 사찰이다.

절을 돌아보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역시 관음을 모신 사찰이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보리암은 불당들도 볼 만하지만 역시 관음을 직접 만나러 가야 한다. 사찰의 제일 양지바른 곳, 남해가 한눈에 보이는 장소에 해수관음상이 서 있다. 관음상이 세워진 것은 1970년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관음보살 기운이 어린 장소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기 위해 찾는다고 한다. 
보리암 전 삼층석탑. 수백년간 보리암을 지켜온 탑이다.
해수관음상 바로 옆에는 ‘보리암 전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땅에 서린 나쁜 기운을 누르기 위해 지은 탑으로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보리암을 지켜왔다. 탑돌이를 하며 소원을 비는 것도 이곳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보리암을 찾은 날도 이른 아침부터 적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은 나이 지긋한 어머니들이다. 
인자한 미소를 띤 보살 앞에 무릎을 꿇고, 탑을 돌면서 간절히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이들의 소망은 무엇일까.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들은 다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들의 기도가 성취되기를 바라며 함께 고개를 숙여본다.
용문사 전경.

금산과 보리암에 얽힌 이야기는 남해의 또 다른 절인 용문사와도 연결된다. 용문사는 금산에 있던 보광사 후신으로 전해진다. 현종 2년인 1661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는데 절 대부분이 전란으로 불탔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보광사 승려들이 승병으로 참전해 왜군과 싸운 결과다. 이후 이 절이 대표적인 호국도량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크지 않은 절이지만 용문사에서는 나라를 지켰던 사찰의 풍모가 느껴진다. 
지난해 말 국가보물로 지정된 용문사 대웅전.
지난해 말 보물 1849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작고 소박하지만 산세에 주눅 드는 일 없이 당당하게 서 있다. 호구산 자락에 서 있는 용문사는 초입의 계곡 풍광이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에 절간 처마 끝 풍경을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곳이다. 남해의 푸른 바다도 좋지만 신록이 그리워질 때 이곳을 찾는 것도 좋겠다.

남해=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여행정보(지역번호=055)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남해는 남해대교를 통해 육지와 연결돼 있다. 남해고속도로 하동나들목에서 나와 1002번 지방도를 타고 남해대교 방향으로 가면 된다. 이후 남해읍을 지나 상주해수욕장 방향으로 가다보면 금산을 안내하는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가천 다랭이마을과 두모마을은 남해읍을 거쳐 남면 방향으로 간다. 남해에는 대형리조트인 사우스케이프리조트(1644-0280)와 힐튼남해리조트(860-0555)가 자리 잡고 있다. 중저가 호텔로는 남송가족관광호텔(867-4710)과 남해비치호텔(862-8880)이 추천할 만하다. 모텔은 남해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남해의 먹거리 중 명물은 멸치쌈밥이다. 인근에서 잡은 멸치를 반건조한 뒤 양념장에 조려 쌈을 싸먹는 음식이다. 삼동면의 우리식당(867-0074)과 여원(867-4118)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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