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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분노와 오염의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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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20 20:44:26 수정 : 2015-04-20 20: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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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 증자가 중병에 걸려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맹경자가 문병을 왔다. 이때 증자가 말했다. “새는 죽을 적에 그 울음이 애처롭고, 사람은 죽을 적에 그 말이 선하다.”(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논어(論語) ‘태백(泰伯)’편이 전하는 얘기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마지막 말이 선하다는 얘기도 이제 옛말이 됐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마지막 말 때문에 우리 사회가 온통 아수라장이 됐다. 가뜩이나 할 일이 태산인 박근혜정부는 어두운 과거 기억의 블랙홀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거액의 회사 돈 횡령, 사기대출, 분식회계 혐의로 검찰에 의해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상태였다. 그가 울먹이며 쏟아낸 말을 보면 참으로 세상을 잘못 살고, 잘못 이해한 흔적이 역력하다. 과연 그의 말대로 청렴하고 억울하다면 법정에서 낱낱이 밝혔어야 했다. 물론 다가올 검찰의 수사와 이어질 여론의 따가운 눈초리, 드러날 부정부패의 연쇄 고리 등을 생각하니 뒷감당이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64년의 삶을 마무리하는 방식은 비겁하다. 유서에서는 반성의 마음을 읽을 단서가 하나도 없다. 한마디로 ‘나 죽은 뒤에 고생해봐라’ 하는 식이다.

그는 대기업 총수로서는 보기 드물게 뇌물도 직접 건넸다고 한다. 직접 눈으로 부정의 얼굴을 확인하고 눈도장을 찍으려는 심리가 엿보인다. 뇌물의 배달사고를 걱정한 탓도 있겠지만, 부정의 연대감을 더욱 공고히 할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장학사업을 통해 많은 학생들에게 덕을 베푼 인격에는 어울리지 않는 처신이다. 증자는 다음의 말로 마무리를 한다. “군자는 도를 귀하게 여긴다. 용모는 사납거나 태만하지 말고, 안색은 믿음을 우러나게 하며, 말은 비루함과 배반을 멀리하여야 한다.” 그러나 성 회장의 용모는 분노와 억울함에 차 있었고, 안색은 믿음을 주기는커녕 폭풍불안을 몰고 왔으며, 사회에 대한 비루함과 배반을 물씬 느끼게 한다.

적어도 유서에서 “부정부패를 하지 않고서는 기업을 운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부정을 저질렀다. 그러나 앞으로 남은 사람들이 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었으면 한다”는 정도의 내용이라도 한 줄 있었으면 최소한 마지막 도리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성 전 회장의 맹목적인 분노와 오염의 심리에 전염돼 우리 모두가 우울증에 걸린 듯하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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