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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위기불감증’에서 깨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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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21 21:22:36 수정 : 2015-04-21 23:5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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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국회·기업, 겉으로만 경제 걱정
정부, 규제숨통 틔우고 기업도 과감한 투자를
‘미지근한 물 속의 개구리’란 말이 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곧바로 뛰쳐나오지만, 미지근한 물 속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자신이 죽어가는지도 모른 채 죽는다. ‘위기불감증’에 처해 있는 한국경제의 현실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실제 한국경제는 저고용,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급기야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4개월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10년 22.0%로 정점을 찍었던 수출증가율은 2011년 13.9%로 떨어지더니 2012년 5.6%, 2013년 4.8%, 2014년 4.4%로 5년째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러다 보니 국내외 경제기관들조차 앞다퉈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하향조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사태평이다. 머리를 맞대고 살길을 모색해도 시원찮을 판에 말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아픈 기억을 벌써 잊은 건 아닌가. 당시 국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장롱 속에 깊숙이 넣어두었던 금붙이를 내놨다. 미래를 꿈꾸며 알뜰이 모아오던 적금도 여차하면 깼다. 진짜로 돈이 없던 ‘유동성 위기’ 속에서 목까지 차올랐던 불만을 꾹꾹 참았다. 국민과 기업들은 정부가 내놓는 대책에 허리띠를 졸라매며 묵묵히 따랐다. 이 덕에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위기를 극복했고, 세계인들의 찬사도 이어졌다.

김기동 산업부장
지금은 어떤가. 정부와 국회, 기업 모두 겉으로는 경제를 걱정한다. 하지만 말뿐이다. 외환위기 때와 달리 지금 기업들의 곳간에는 돈이 넘쳐난다. 기준금리 ‘1%대’ 시대, 가계부채가 다소 걱정이지만 시중의 유동성도 풍부하다. 그런데도 ‘돈맥경화’ 현상이 심각하다. 기업이나 부자들은 정부의 경기부양책을 비웃듯 지갑을 꼭꼭 닫았다. 성완종 파문에 휩싸인 국회는 연일 힘겨루기하느라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인 사이 국정을 책임 진 총리가 불명예 퇴진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일어났다.

그동안 여의도 주변에서 간간이 들리던 ‘경제’라는 단어는 자취를 감췄다. 돈이 안 돌다 보니 서민 살림만 더욱 팍팍해졌다. 기업들이 먼저 깨어나야 한다.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가 ‘넥스트 소사이어티’에서 “기업가 정신이 가장 충만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지칭한 게 무색할 정도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보자. 그가 1972년 울산 미포만에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소를 짓겠다고 나섰을 때 모두들 불가능한 일이라며 말렸다. 그는 이때 “이봐, 해보기는 해봤어?”라고 되물었다. 착공도 안 한 조선소 부지 사진과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설계도 한 장으로 유럽을 누빈 끝에 조선소의 시발이 된 선박 수주에 성공했다.

우리 경제가 짧은 기간에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경영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도체라는 거대한 모험을 감행한 이병철 고 삼성 창업주나 황무지에서 철강산업을 일군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도 추진력이 뛰어난 경영인들이었다. 굳이 멀리 볼 필요도 없다. SK하이닉스를 보자. 10년 전만 해도 회생 가능성이 없어 문 닫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러던 2012년 2월 최태원 SK회장이 그룹 내부 반대를 물리치고 3조3000억원이라는 ‘통 큰 베팅’을 했다. 심지어 부채와 누적결손액 10조원까지 떠안자 주변에서는 ‘무모한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3년이 지난 지금 SK하이닉스는 세계 D램 메모리반도체 최강자가 됐다. 시총 2∼3위를 넘나드는 알짜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분기마다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며 SK그룹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도 규제개혁 등을 통해 기업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기업들도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로 화답할 때다.

위기는 ‘동전의 양면’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기업가 정신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 현 경제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직시하는 게 첫 번째다. 그래야 후속조치가 나온다. 뜨거운 것보다 미지근한 것이 더 위험할 수 있다.

김기동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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