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30년 전의 일이다. 새해 벽두 새벽 비상 사이렌이 요란했다. 귀를 파고드는 소리에 파주 작은 마을 주민은 새벽잠을 설쳤을 터다. 무기고로 내달렸다. M-50 기관총은 어찌 그리도 무겁던지, 어깨에 둘러매고 탱크, 미사일장갑차 있는 곳에 다다랐을 땐 기진맥진하다시피 했다. 식은 땀을 흘리며 키를 꽂는 순간, 아뿔싸!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눈 쌓인 기지 곳곳에서 터진 외침들,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 황당한 일도 없었다. 40대 넘는 탱크와 장갑차 중 시동 걸린 차는 한 대도 없었으니. 성탄절 이후 열흘 내내 추위에 방치해뒀으니 무쇠는 얼음덩이로 변해 있었다. 그날 결국 출동하지 못했다. 전쟁이 터졌다면? 아찔하다. 그 부대는 서부전선을 지키는 미군 2사단 정예 기갑항공수색대다. 우리 군단 화력보다 강하다고 했다. 1976년 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에는 판문점 상공에 공격용 헬기를 까맣게 띄워 무력시위를 했던 부대다. 100년 넘는 부대 전통, 서부영화에도 나온다.

카투사 졸병은 생각했다. “이러고 어떻게 전쟁을 치르나.” 이라크전쟁이 터지자 그 부대는 전장으로 갔다. 잘 싸웠는지….

주한미군 사상 초유의 사건이 터졌지만 대장은 건재했다. 그때만 해도 미국은 자신만만했다. 누가 미국에게 대들겠는가. G2가 있었던가, 테러 위협이 있었던가. ‘죽의 장막’을 갓 걷은 중국은 화교자본 끌어들이기에 바빴다. 북한은? 판문점 무력시위에 꼬리를 내렸다. 지금은 좀 다르다.

황당한 일이 서해에서 터졌다. 북한 경비정이 고장 나 바다에 둥둥 떠다녔다고 한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까지 떠내려와 다른 북한 함정이 끌고 갔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런 망신이 또 있을까. 수백척의 중국 어선이 그 모습을 지켜보지 않았는가. 궁금하다. 함장은 발을 동동 굴렸을까, 당연시했을까. 다른 경비정은 괜찮은 건가. 탱크와 장갑차는 또 어떨까.

표류 경비정에 탄 북한 졸병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러고 어떻게 전쟁을 하겠다는 건가….’

임진왜란 직전 일본 사신 귤강광(橘康廣)이 조선에 왔다. 인동(仁洞)을 지날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희들의 창자루가 너무 짧구나.” 왜국 사신을 맞는 인동 군졸을 보고 한 말이다. ‘징비록’에 나온다. 인동은 구미의 옛 이름이다. 무슨 말인가. 그런 창으로 무슨 싸움을 하겠느냐는 소리다.

강호원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
  • 이다희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