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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보수 정치인 유승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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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24 21:30:24 수정 : 2015-04-24 21: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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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은 기념비적이었다. 최근 수년간 그렇게 마음을 잡아당기는 연설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그의 연설은 신선하고 따뜻했으며, 정직하고 믿음직했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틀을 벗어나 ‘진영의 창조적 파괴’의 꿈을 얘기했고, 보수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밝혀 기회주의와 비리, 철 지난 이념 강박증에 오염돼 정체를 알 수 없게 된 지 오래인 대한민국 보수의 지향점을 새삼 일깨웠다.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 그가 꿈꾼다는 보수가 원조 보수, 진짜 보수일 것이다.

출발점은 1년이 되도록 진실이 가라앉은 세월호였다. 피붙이 시신이라도 찾아 유가족이 되고 싶은 실종자 가족의 ‘슬픈 소원’을 전하며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물었다. 난치병으로 청력을 잃어가면서도 “딸의 뼈라도 껴안고 싶어서” 인양 촉구 시위를 벌이는 다윤이 어머니의 눈물을 정치가 닦아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을 고백했고,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데 있어 법인세도 성역이 될 수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저성장 해법에 대해선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대책을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한다면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 것”이라며 “이제 단기 부양책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고 단언했다. 양극화, 고령화와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저성장이란 중병을 단기부양이란 대증요법으로 고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전·현 정권의 녹색성장, 4대강 사업, 창조경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성장 해법일 수 없다고 고백했다.

그의 연설은 화려한 포장이 아니라 진실된 내용으로 다가왔다. 나라 운명과 정치, 국민경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연설 전반에서 느껴졌다. 경제학자로서의 통찰력도 빛났다. 그는 “심각한 양극화 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갈수록 내부로부터의 붕괴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 위험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것도 보수의 책무라고 했다. 그의 연설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보수의 양심 고백이자 혁신선언이었다. 그는 “새누리당이 보수의 새 지평을 열고자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새 지평은 쉽게 열릴 것 같지 않다. 기다렸다는 듯 드러난 보수의 추악한 민낯에 연설의 감동은 잊혀지고 말았다. 바로 다음 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과 그 이튿날 시작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기회주의와 비리에 오염된 보수의 맨 얼굴을 드러냈다. 보수의 새 지평을 열어야 할 그들은 10여년 전 차떼기(2002년 불법대선자금 사건) 정당 그대로였다. 게다가 더 뻔뻔해졌고 민심을 느끼는 감각은 아예 닳아 없어진 듯하다. 개혁 대상이 개혁을 외치고 비리 혐의자가 비리 척결을 발표하는 블랙 코미디가 권부 핵심에서 버젓이 연출되는 건 정상이 아니다. 비정상이 정상처럼 느껴질 만큼 비정상은 권력 주변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문자 뜻 그대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꾸준히 진행 중이다.

류순열 선임기자
그 누구도 이완구 총리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망인으로부터 돈을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14일 국회 대정부 질문)고 오버했다. 민망하게도 바로 다음 날 ‘망인’이 3000만원을 비타500 상자에 넣어 그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증언이 나왔다. 민심은 비타500이 핀테크 산업에 진출했다는 패러디로 그를 풍자했다. ‘수수료도 없고 공인인증서나 액티브X도 필요없는 간편 송금’이란 설명이다. 와중에 역시 거짓말로 10만달러 수수 혐의를 스스로 키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버젓이 일본을 다녀왔다. 법 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그는 출국금지가 돼 있어야 했다.

주거니 받거니 심야의 총리 사의 발표도,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화답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거기에서 성난 민심을 헤아린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보수 정치인 유승민은 매일 이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고 했다. 보수다운 보수, 고통받는 국민의 편에 서서 용감한 개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꿈은 별처럼 빛나지만 현실은 아득하기만 하다.

류순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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