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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태산처럼 무거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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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24 21:29:17 수정 : 2015-04-24 21: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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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도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으신가요?” 최인호가 묻고 법정이 답한다. “그럼요. 외로움을 모르면 삶이 무디어져요. 하지만 외로움에 갇혀 있으면 침체되지요. 외로움은 옆구리로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최인호가 한 발 더 나아간다. “고독을 달랠 방법은 없습니다. 스스로 인간이 고독한 존재임을 받아들여야 그것을 통해 성숙할 수 있습니다.” 마침내 법정은 죽음을 말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법정과 최인호의 산방대담, 여백)

사마천은 궁형을 받아 고환을 적출당했다. 수년간 쓴 ‘사기’ 원고는 몰수돼 불태워졌다. 하루에도 수십 번 자살을 생각했다. 짐승만도 못한 신세가 됐으니 무슨 의미로 살 것인가. 사마천은 수없는 날을 지새우는 오랜 고통을 겪은 끝에 답을 찾았다.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고독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서였다. 그는 이런 말을 남긴다.

‘인고유일사 혹중어태산 혹경어홍모(人固有一死 或重於泰山 或輕於鴻毛).’ “사람은 태어나서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라는 의미다. 사마천은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을 택하고 그것을 위해 더욱 뜨겁게 살았다. 기억을 더듬으며 사기 집필을 재개했다. 마침내 기원전 91년 중국의 역사서인 사기를 완성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사마천의 죽음이야말로 태산처럼 무거운 삶이다.

한 여고생이 마포대교를 찾아 울고 있다.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다 자살을 결심했다. 아무도 없다. 비가 내려 세상의 색조는 어둡고 빛은 가라앉아 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붉은 복숭아처럼 부어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20대 여순경이 가만히 다가간다. 여고생과 무릎을 맞대고 손을 잡아 가슴 앞으로 끌며 말을 건넨다. “많이 힘들었지…집에 가자.” 여고생이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낀다. “언니 저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죽기 싫어요.” 이 장면을 찍은 어제 아침 신문의 사진 한 장, 기사 한 줄이 마음을 울린다.

법정처럼, 사마천처럼 외로움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이왕 이 세상에 한 번 온 만큼 태산처럼 무거운 삶을 살아야지, 새털보다 가볍게 떠날 수야 없지 않은가.

백영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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