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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사이드] 기부자가 신원 안 밝히면 ‘검은 돈’ 검증 사실상 불가능

관련이슈 '성완종 리스트' 정국 강타

입력 : 2015-04-24 19:21:50 수정 : 2015-04-24 19: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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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 리스트’ 계기로 본 정치자금 관리 실태
“정치자금 고액 제공자의 신원이 정확히 기재되지도 않고 이를 규제하거나 처벌할 법규도 거의 없어요. 증권거래소 등에 제출하는 기업의 ‘사업보고서’만도 못해요. 게다가 선관위가 언론이나 시민단체에 공개하는 내역도 부실해 실체적인 검증을 가로막고 있죠.” 오랫동안 정치부에서 근무하며 정치자금 문제를 취재한 한 언론사 기자는 24일 현행 정치자금과 관련한 법규와 체제 등의 문제점을 말해달라는 부탁에 이렇게 답했다. 정치자금 내역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객관적인 검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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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을 강타한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정치자금 관리체제의 총체적 부실이 재확인되고 있다. 2012년 5월부터 2년간 선진통일당, 새누리당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정치인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 실체가 선관위가 관리 중인 자료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치자금 고액 기부자의 신원을 확실히 기재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물론 미국 등 선진국처럼 고액 기부자의 신원을 선관위 홈페이지 등에 공개해 언론과 시민단체 등이 상시 검증하도록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실한 정치자금 기부 내역 관리

중앙선관위가 공개한 ‘정치자금 고액기부자 내역’ 등에 따르면 성 전 회장은 2013년 8월1일부터 12월21일까지 의원 시절 경남기업 대표 등 고위 임직원 9명으로부터 38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 비록 경남기업이 사실상 자신의 기업이라 하더라도 현행 정치자금법(31조1항)은 법인과 단체의 조직적인 정치자금 제공을 불법으로 규정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셈이다.

하지만 고액기부자 내역에는 경남기업 대표이사나 전무, 상무, 상무보 등 고위직이던 이들의 직업은 모두 ‘회사원’으로만 기록돼 있어 경남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음을 쉽사리 알 수 없다. 생년월일이나 주소, 전화번호조차 알 수 없었던 2004년 첫 공개 때보다 규정이 진전됐지만 여전히 미흡한 셈이다.

다만 성 전 회장 측이 제출한 내역의 경우 이를 관리하고 선관위에 제출하는 후원회가 경남기업에서 정치자금을 받았음을 알 수 없도록 부실 기재한 측면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이 부실한 것도 문제지만 이를 규제할 제재 수단이 없는 것도 문제다. 정치자금법(37조2항)은 후원회 회계책임자가 기부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와 직업, 전화번호 등을 기재하도록 돼 있지만 기부자가 알리기를 꺼릴 경우 제재할 수단이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우리도 기부자의 정확한 신원을 기재하고 싶지만 기부자 측에서 피해를 우려해 정보 제공을 꺼리는 사례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지난해 300만원 넘게 기부한 고액 기부 3000여건 중 26건에는 생년월일조차 없었고 직업도 120건이나 기록되지 않았다.

◆검증 가로막는 부실한 내역 공개

검증 단계의 문제도 적지 않다. 선관위는 시민이나 언론 등의 정보공개 요구에 고액기부자 내역을 공개하고 있지만 생년월일만 제공할 뿐 주소의 구체적인 지번과 전화번호의 국번 및 뒷자리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생년월일이 같은 기부자의 경우 누가 누구인지 쉽게 검증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경남기업의 김모 상무와 동명의 기부자는 2013년 새누리당 정우택(청주시 상당구) 의원에게 500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나이가 같아 의심이 가지만, 기부자의 주소 지번과 전화번호 뒷자리가 공개되지 않아 경남기업 임직원인지에 대한 최종적인 확인은 불가능하다. 공개 수준이 미흡해 검증을 가로막는 셈이다.

선관위 측은 기자와 통화에서 “우리도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위해 기재된 내용의 전부를 공개하고 싶지만, 현행 개인정보보호법 등 여러 규정 때문에 주소의 지번과 전화번호를 완전히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치자금은 풀되 투명성은 강화해야

미흡한 정치자금 관리 및 검증체제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정치권으로 돌아간다. 이번 같은 불법 정치자금 의혹 사건이 발생하면 국민은 정치권을 불신할 수밖에 없고 정치자금이 필요한 정치권 고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은 전날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국회의원이 잘한다고 주는 경우도 있지만 이해집단 또는 어느 직능단체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소위 로비용으로 후원금을 줄 수도 있다”며 “국회의원은 자유롭지 못하고 늘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번 파문을 계기로 정치자금 투명화 논의도 다시 부상하고 있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정치자금 투명성을 제고하는 것이 우리 정치권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는 지름길”이라며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후원금제도를 이렇게 바꿔야 되겠다는 대선언 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중앙선관위는 기부자의 인적사항 ‘직업’란을 회사명을 넣어 구체적으로 기재하고 기부자의 인적사항 제공요청을 금융기관이 불응하면 처벌할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국회에 제안한 상태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에는 새정치연합 김민기 의원의 대표 발의로 고액 기부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직업, 전화번호를 알 수 없는 후원금을 국고로 귀속시키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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