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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군인 남친 기다리는 '곰신'의 애환,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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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25 13:24:43 수정 : 2015-04-25 15: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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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1일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 인근 혹한기 훈련장에서 방어부대가 경계작전을 펼치고 있다. 매서운 추위 속 밤하늘에 별이 유난히 반짝인다.
김범준 기자

“민머리 사나이들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숟가락질을 하는데 어머니들은, 애인들은 도무지 밥이 넘어가질 않는 모양이다. 밥 먹는 모습이 저토록 처량할 수 있다니. 군대가 대체 뭐기에···”

소설 ‘군대 이야기’에 나오는 논산 육군훈련소 근처의 한 식당의 풍경이다. 훈련소 입소 직전, 가족·친구·애인과 마지막 식사를 하는 장면이다.

대한민국에서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군 입대를 피할 수 없다. 군 복무는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지만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고 홀로 기다리는 ‘곰신(고무신의 줄임말)’들의 애환은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간다.

스마트폰을 놓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해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통화하다 울컥해 눈물을 쏟기도 하며, 휴가 나온 남자친구가 부대에 복귀하면 그리움에 후유증을 앓기도 한다. 북한의 도발이나 군 내 가혹행위 등이 이슈가 되면 자신의 남자친구가 힘들어질까봐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 “기다리느라 힘들지만, 더 예쁘게 사랑할래요”

모든 대화가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디지털 시대에서 군대는 스마트폰, 인터넷 등이 금지되거나 사용이 제한되는 유일한 공간이다. 따라서 전화나 편지 등 아날로그적 방식이 대화의 주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실제로 네이버 '고무신 카페' 같은 곰신들의 온라인 모임이나 각 부대 인터넷 카페, 육군훈련소 홈페이지 등에서는 이와 같은 에피소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언제 전화가 걸려올지 몰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막상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사연에 공감하는 사람들도 눈에 띤다.

올해 초 남자친구가 입대한 곰신 A씨는 “군대 간 남자친구가 처음으로 손편지를 보냈는데 뜯는 순간 눈물이 났다. 읽으면서 엄청 울었다. 반갑고, 고맙고, 안쓰럽다”는 글을 남겼다.

B씨는 육군에 입대한 남자친구가 휴전선에 인접한 GOP로 투입되자 “연락하기 힘들다”며 GOP 부대는 연락을 자주 하기 힘드냐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곰신 C씨는 “핸드폰 놔두고 자리를 비운 사이 남친에게 전화가 왔다”며 “저녁까지 기다렸는데 통화가 되지 않아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휴일을 맞아 장병들이 면회소에서 친지, 동료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사진=육군


자살하려 한 애인을 살리기 위해 택시를 탈취해 부대로 달려간 경우도 있다.

강원 홍천군이 관할지역인 육군 모 사단의 조모 사단장(육군 소장)은 지난달 24일 오후 1시쯤 홍천군청과의 업무협의를 마치고 부대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택시 정류소에서 한 택시기사가 택시를 손으로 치면서 “서!, 서!”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조 소장은 경찰에 신고하는 한편 운전병에게 택시를 추격하라고 지시했다. 홍천강변길을 달리던 택시는 막다른 길로 들어선 후 얼마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때맞춰 4~5대의 경찰차가 몰려와 택시와 사단장 관용차를 에워쌌다.

경찰의 포위망속에 택시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스무살 남짓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이 여성은 조 소장에게 “제 남자친구가 자살한대요. 빨리 그 부대로 가야해요”라고 소리쳤다.

경기 화성에서 왔다는 이 여성은 얼마전 군복무 중인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는 뜻을 전했는데 이날 남자친구로부터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듣고 정신없이 달려왔다는 것이다.

조 소장은 사단에 이 여성의 남자친구가 있는지 파악할 것을 지시했지만 같은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인근 지역의 다른 사단에 연락한 결과 그 병사를 찾을 수 있었고, 두 남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홍천경찰서 관계자는 “택시 운전자와 범인 검거에 앞장선 사단장도 처벌을 원치 않지만 이 사건은 반의사 불벌죄가 아니라 법적으로는 처벌하게 되어 있다”면서도 선처를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등병으로 자대 배치를 받은 남자친구 목소리에 힘이 없다”며 가혹행위를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곰신, 첫 면회에 들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는 곰신, 휴가 복귀한 남자친구가 다시 보고 싶어 후유증을 앓는다는 곰신까지 각양각색의 에피소드들 속에 오늘도 곰신들의 사랑이 온라인을 가득 채우고 있다.

◆ 軍, 곰신 불안하게 하는 ‘카더라’ 진화 부심

일반 사회와 달리 소식을 실시간을 주고받기 어려운 군대의 특성은 ‘카더라’ 식 소문을 만들어내기 쉽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퍼지면 군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장병들의 사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육군이 24일 홈페이지에 ‘내가 아는 선배, 친구, 가족들이 군대에 가면 ~~카더라, 진실은?’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것은 이러한 불안과 불신을 가라앉히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이 글은 ‘이등병은 생활관에 누워 있으면 안 된다더라’는 소문에 대해 “이등병도 생활관에 누워도 괜찮다”고 답했다. ‘PX는 상병부터 갈 수 있다더라’에 대해서는 “PX 이용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버지식정보방, 편의시설은 이등병은 사용 못 한다더라’라는 말에는 “사이버지식정보방과 기타 편의시설 사용에 계급의 제한은 없다”고 전했다. ‘생활관에서 이등병은 각 잡고 있다더라’는 “생활관은 휴식하고 자기개발을 위한 장소”라고 바로잡았다.

‘최초 전입 때 신고식 및 장기자랑을 한다더라’라는 소문에 대해서도 “전입신고는 지휘관에게만 하고, 장기자랑 등의 관습은 금지되어 있다”고 답했다. ‘휴가 나갔을 때 선임 선물을 사와야 한다더라’에 대해 “출타자의 불필요한 물품의 반입은 통제되어 있고, 선물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화 훈련을 받고 있는 육군 장병들(자료사진)


한편 국군복지단은 지난 20일부터 병사복지 증진과 사회와의 단절 극복을 위해 부대 안팎에서 병사들을 대상으로 ‘휴대폰 대여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병사들은 부대 내 마트에 비치되어 있는 휴대폰을 빌려 기본료 없이 충전한 금액만큼 사용할 수 있다. 기본료 없이 미리 충전한 금액만큼 사용할 수 있어 통신료 부담이 적고, 실시간으로 연락이 가능하다.

휴가나 외박 등 장기 출타자나 공무상 당일 외출하는 장병들은 물론, 영내에서 휴식 중인 장병들도 마트에서 전화나 문자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출타 장병은 위병소를 통과하는 순간부터 복귀할 때까지 이용할 수 있다.

휴대폰 대여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원하는 시간에 연락이 가능해 곰신들의 ‘기다림’ 해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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