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지인들과 가벼운 모임을 가졌다. 4·29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지역에 거주하거나 거래처를 두고 있는 2명도 함께했다. 자연스럽게 선거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다. 대화는 “나는 친이계가 아니다”며 절규하듯 세상을 떠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관해서도 이어졌다. 내년에 치러질 미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힐러리 클린턴도 언급됐다.
대화는 한국과 미국의 언론보도를 비교하는 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중앙정치와 지방자치 기사를 볼 때 암울한 생각이 든다는 말이 나왔다. 3김 이후에도 사람과 인맥 중심의 기사가 넘친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친박, 친이, 비박, 친노, 비노 등이 아니면 기사가 안 되느냐”는 힐난도 이어졌다. 자리를 함께한 언론인으로서 민망했다.
박종현 사회2부 기자 |
미국 정치권 인사들은 ‘바닥’ 혹은 ‘현장’의 경험을 살려 중앙의 거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이들도 지방행정 혹은 국정 경험에 밝다. 야당인 공화당 주자군이 더욱 그렇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 등은 지방행정에 이름을 알린 이들이다.
현장의 계단을 밟아 오르는 미국에서 정치인은 두 발에 먼저 힘을 줘야 하는 게 당연하다. 이 같은 상황은 학력, 그도 아니면 거인의 어깨에 기대어 설명되는 한국의 정치인과는 확연히 다르다. 한국 정치인은 거물의 사무실로 바로 통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는 손가락에 먼저 힘을 주곤 하기 때문이다. 밝은 현장과 달리 고위직을 남몰래 만나는 닫힌 사무실에서는 음침한 눈빛과 달아오르는 욕망이 앞설 수 있다.
4월의 끝무렵에 이런 생각이 짙어진다. ‘성완종 리스트’와 4·29 재보궐 선거과정에서도 계산이 난무했다. 리스트에 언급된 숱한 정치인과 그의 비극은 현장보다는 인맥을 과신했던 결과가 아닐까. 출세를 꿈꾸는 사업가와 명망가들이 정치권을 목적지로 두고 거물 정치인이 이를 이용한다면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함께한 우리는 공감대를 형성하며 자리를 파했다.
“유권자들이 땀을 모르는 선출직 인사에게 온정주의 시선을 보내서는 안 돼. 동네의 작은 모임, 기초자치단체, 지방의회 등의 현장에서 경력을 쌓는 이들을 지원해야 해. 그러면 우리가 정치인을 걱정하는 대신에 그들이 우리를 걱정하게 될 거야. 그리고 서민을 대신하는 대통령(代統領)의 탄생도 이어질 것이야.”
박종현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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