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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한 조선 일으켜 세운 영조의 개혁정책 재조명

입력 : 2015-04-28 23:19:37 수정 : 2015-04-28 23: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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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중앙硏 관련 서적 2권 출간 조선시대 영조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군주로 평가받는다. 영조 시대를 다룬 책 2권이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영조의 통치이념과 개혁’(신명호 지음·위쪽 사진)은 영조가 무수한 난관을 극복하고 정치안정과 제도 개혁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를 추적한다. 저자는 영조가 즉위할 당시의 조선을 “노쇠하고 당쟁으로 사분오열된 왕조”라고 평가한다. 영조는 당초 큰 기대를 받은 임금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무수리 출신이었고, 그도 당쟁의 와중에 제대로 된 후계 교육을 받지 못했다.

저자는 영조가 개혁의 기초이론으로 삼았던 통치의 3대 원칙에 주목한다. 영조는 ‘계붕당’(戒朋黨·붕당을 경계한다), ‘계사치’(戒奢侈·사치를 경제한다), ‘계숭음’(戒崇飮·음주를 경계한다)을 치세 52년을 관통하는 원칙으로 삼았다. 저자는 “영조가 성취한 정치안정과 제도 개혁은 결과적으로 3대 통치 원칙의 구현이었다”고 밝힌다.

‘영조대의 양역정책과 균역법’(정연식 지음)은 영조가 신하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균역법을 시행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균역법은 영조 치세 전반기 백성을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양역’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만든 세법이다. 양역은 조선시대 국가가 요구하는 노동력을 징발하고자 16∼60세 양인에게 부과하던 각종 신역(身役)을 말한다.

당시 양역 부담은 주변국의 그것과 비교해 과중하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으나 공평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었다. 영조는 양역 부담을 크게 줄여 포 1필로 균일화하고, 이에 따른 재정결손을 새로운 세원을 발굴해 보충하도록 했다. 책은 양역과 관련한 백성들 삶을 들여다 보고, 영조가 어떤 과정과 시행착오를 거쳐 균역법을 제도로 정착시켰는지 보여준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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