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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의법률산책] 위험한 이중매매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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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28 20:59:59 수정 : 2015-04-28 20: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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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갑의 집에 생면부지의 을이 찾아와 인감증명서 한 통을 떼 달라고 요청했다. 갑은 을이 보여준 계약서를 읽어 보았다. 15년 전 판교신도시 개발 직전에 자신의 딸기 밭을 A에게 5억원에 팔면서 매수인란을 공란으로 해둔 일이 떠올랐다. 그때 갑은 계약서 외에 등기필증, 위임장, 인감증명서 등 등기에 필요한 서류 일체를 A에게 넘겼다. A가 다른 사람에게 등기서류만 건네 미등기 전매한 뒤, 등기서류가 여러 사람을 거쳐 4년 전 을에게까지 온 것이다. 그 땅에서 그동안 비닐하우스 농사를 지었으나, 을이 조립식 창고를 설치해 아웃도어 판매점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을이 자기 명의로 등기하고 싶은데 인감증명서가 걸림돌이 된 것이다.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서는 유효기간이 3개월인 데다 매수인의 인적사항이 적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갑은 을에게 인감증명서를 떼 줄 의무가 있을까. 없다. 갑이 A에게 팔았지, 을에게 판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A가 새 인감증명서를 요구하면 응해야 될까.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소유권을 이전할 의무를 지므로, 갑은 아직 소유권을 취득 못한 A가 등기를 할 수 있게끔 새 인감증명서를 떼 줄 의무가 있다. 15년 전에 매도해 채권의 소멸시효기간 10년이 지났지만 그렇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매수인이 부동산을 인도받아 계속 점유하거나 전매해 인도한 경우에는 매수인의 이전등기청구권은 시효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매도인의 대금청구권은 시효에 걸리지만, 매수인의 이전등기청구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인데 이해하기 어렵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을이 중간매수인을 모두 찾아내면 대위소송(代位訴訟)을 통해 그들 명의로 순차적으로 등기한 뒤 최종적으로 자기 명의로 등기를 할 수는 있다. 그렇게 되면 세금을 한 푼도 안 내고 막대한 전매차익을 얻은 중간매수인이 세금추징과 함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을 자신도 3년 이상 장기미등기한 죄로 거액의 과징금, 이행강제금과 함께 징역이나 벌금에 처해 질 수 있다. 그래서 을이 갑에게 찾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갑이 을에게 등기해 줄 의무가 없다고 지금 50억원을 제시하는 병에게 매도하고 이전등기해 주면 어떻게 될까. 병이 이중매매인 것을 알면서 갑을 꼬드기지 않은 이상, 병은 소유권을 취득한다. ‘계약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 로마법 이래의 법 원칙이다. 하지만 지키지 않으면 법적으로 손해배상과 같은 대가를 치를 뿐 계약을 절대 파기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갑이 병에게 매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부동산을 매도해 중도금 이상 받은 후 타인에게 이중으로 매도해 등기를 넘겨 준 자는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산의 경우는 처벌하지 않으면서 부동산의 경우만 처벌하는 것은 균형이 맞지 않고 과잉형법이 될 수 있다 는 비판이 있다. 사법(私法)은 자유경쟁에 기초하고 있고, 제1매수인이 매도인의 이중매매를 막으려면 가등기를 해두면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현재 부동산 이중매매는 꿀처럼 달콤할 수 있으나, 벌에 쏘일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정병호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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