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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기대에 못 미친 대국민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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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4-28 21:02:08 수정 : 2015-04-28 23: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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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 파문 언급 안 해 ‘유감’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무한책임져야
얼마 전 한 잡지에서 ‘진정한 사과(謝過)의 조건’이라는 기고문을 본 적이 있다. 첫째, 누구에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힌다. 둘째, 비록 자신은 다르게 생각하는 점이 있더라도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이 당연함을 인정한다. 셋째, 사과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넷째, 잘못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다 등등. 한마디로 사과가 받아들여지려면 제때 피해자의 감정을 헤아리고 구체적인 표현을 쓰라는 것. 유권자를 상대하는 정치인들에게 특히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위기에 몰린 박근혜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의 시점과 강도는 무척 중요한 사안이었다. 너무 늦어지면 효과가 없고 진정성이 부족하면 민심이 나빠질 수 있어서다. 국민들은 이제나저제나 대통령의 발언을 기다렸다. 

채희창 편집국 부국장
중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그제 귀국한 박 대통령은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표를 수리했다.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어제는 와병을 이유로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총리 사퇴 문제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유감”이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대신 발표하게 했다. 국민들이 사과를 요구하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에 노무현정부에서 이뤄졌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특별사면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야당은 “진정성 없는 대독(代讀) 사과이고, 측근이 연루됐는데 책임은 지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묻고 있다”며 반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대통령이 몸통인 사건”이라고 정면으로 치받았다. 메시지 발표로 인해 정국 수습은커녕 혼선이 가중되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은 성완종 파문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없는 것 같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강도 높은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진솔한 사과를 원하는 민심을 체감하지 못하는 건지, 애써 외면하는 건지 궁금하다.

왜 이 같은 간극이 생기는 걸까. 박 대통령은 성완종 파문은 본인이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듯하다. 자신의 최측근인 친박 실세들이 대거 연루됐는데도 남의 일처럼 말하는 ‘유체이탈 화법’이 나오는 건 이런 인식에 따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민정서상 판결’은 유죄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국민들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 총리가 오히려 사정 대상 1호라는 성 전 회장의 발언에 경악했고 이 총리의 ‘거짓말 시리즈’에 분노했다.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10만달러를 받았다고 적혔고, 그의 해명도 잇따라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자 ‘유죄 심증’을 굳혔다. 최근 발표된 갤럽조사에서 응답한 국민의 84%가 ‘금품수수 의혹 대부분이 사실일 것’이라고 했다. 고작 3%만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답했다. 새누리당 지지층도 78%가 ‘대부분 사실일 것’이라고 응답했다. 박 대통령에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은 아무리 떳떳하더라도 총리가 사퇴하고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이 금품수수 의혹을 받고 있다면 대통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 전 회장이 친박 핵심들에게 건넸다고 폭로한 대선후보 경선자금은 박 대통령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남의 이야기 하듯 적당히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박 대통령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정면돌파하는 승부사 기질을 보였다. 탄핵 후폭풍과 대선자금 차떼기당 때는 당사를 팔고 2년여 천막당사 생활을 견디며 당을 살렸다. 당시에는 진정성 있는 대국민 사과를 했고, 행동으로 보여줘 민심을 얻었다. 하지만 성완종 파문에 대해서는 민심과 어긋나는 ‘꽉 막힌’ 대응을 하고 있다. 진정성 있는 사과를 통해 국정 혼란을 수습하고, 경제 살리기와 부패 척결에 매진하는 게 더 현실적인 전략일 텐데 말이다. 진솔한 사과 없이 민심이 수그러들지도 의문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정말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정치인에게 진정한 사과는 정말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채희창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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