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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칼럼] 불편한 효도와 편안한 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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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03 21:14:30 수정 : 2015-05-03 21: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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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수 없는 효도’ 강요하는 사회
삶의 조건 따라 효도 방법 바뀌어야
5월은 별칭이 많다. 아름다운 꽃이 여기저기에 피고 날씨도 활동하기에 좋아 계절의 여왕으로 불리고,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등 가족 행사와 관련된 날이 많기에 가정의 달로 불린다. 사실 가족과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적으로 하는 날이어야지 기념을 해야 할 날이 아니다. 늘 가족과 함께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데 ‘오늘 신나게 맘껏 놀아보자’며 판을 벌이는 것이 이상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이상할 것 같은데 가족끼리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동과 어버이가 아직 남아 있고, 또 삶의 조건이 아직도 가족을 가정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직장에서 퇴근이 늦으니 자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없고, 자녀는 학업 성적 올리느라 학원을 다니니 집에 일찍 돌아올 수가 없다. 가족이기는 하지만 가족적 유대를 다질 수 없다면 실질적인 가족이 아니라 명목상의 가족일 뿐이다.

이렇게 가족이 제 노릇을 못하고 있으니 그에 따라 효도의 의미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면 ‘가정교육이 없어서 그렇다’거나 ‘인성이 나빠서 그렇다’고 말하며 효도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하지만 현대의 삶의 조건이 과거의 그것과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데도 ‘무조건 효도를 하면 좋아진다’라는 말은 너무나도 낭만적인 주장으로 들린다. 지킬 수도 없는 효도를 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오히려 효도를 불편하게 여기게 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 상을 치렀다. 사대부가 3년 상을 치르지 않으면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등 사회적 제재를 받았다. 과거에 부모에 대해 3년 상을 치렀다고 지금도 그래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그 효도는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불편한 효도가 될 뿐이다. 어느 사람이 3년 상을 치른다고 직장에서 휴직하겠다고 하면 휴직을 승인하고 3년 뒤에 복직 처리를 해줄까. 그런 직장은 없을 것이다. 또 저녁에 부모의 잠자리를 봐드리고 아침에 문안 인사를 하는 혼정신성(昏定晨省)이 효도의 기본이었다. 오늘날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살지 않은 경우가 많고, 함께 살더라도 생활 주기가 서로 다르다.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혼정신성을 해야 한다고 요구한다면, 퇴근하고 부모가 계신 곳을 찾아가야 하고 야근하고 들어온 자녀를 깨워야 한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이렇게 볼 때 우리는 효도를 하면 좋다고 하더라도 ‘불편한 효도’를 요구해 불효자를 양산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삶의 조건과 부합하는 맥락에서 효도의 정신을 살리는 ‘편안한 효도’를 고려할 때가 됐다. 역사적으로 보면 효도는 그 내용과 의미가 다양하게 바뀌어왔다. 초기에만 해도 효도는 가문의 조상을 숭배하는 측면을 중시했다. 이러한 중시는 철에 따라 정성껏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효도가 표현됐다. 공자가 활약할 당시에 효도는 자신의 부모를 정성껏 모시는 태도로 바뀌게 됐다. 즉 효도가 가문에서 가족으로 초점이 바뀐 것이다.

오늘날 가족 구성원이 각자 독립적으로 생활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공동의 기억을 갖추기가 어렵다. 아울러 현대사회는 지구화가 심화되면서 삶의 조건이 급격하게 바뀌고 테러와 범죄 등으로 삶의 위기가 증대되고 있다. 현대인은 서로에게 연결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짧은 시간’만이라도 연락이 되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 났는지 걱정을 하게 된다. 심지어 가족의 활동 지역에 무슨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는 보도가 났을 때 연락이 되지 않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러한 삶의 조건을 고려하면 오늘날의 효도는 자주 연락해 서로 걱정하지 않게 하고 저녁에 함께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의 회복, 즉 안부(安否)의 확인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안부는 ‘편안한지’에서부터 ‘살았는지’ 여부를 묻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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