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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너무 다른 길 걷는 독일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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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03 21:20:33 수정 : 2015-05-03 21:3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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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지 않고는 화해도 있을 수 없다”
獨은 반성 외치는데 日은 과거사 덮기 혈안
2차대전 패전국 불구 왜 이렇게 다른지 씁쓸
1945년 5월8일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을 선언했다. 그해 8월15일 일본의 항복을 끝으로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1985년 5월8일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서독 대통령은 서독 의회에서 종전 40주년 기념 연설을 했다. 그는 “독일 국민도 나치의 등장에 책임이 있다”며 “과거에 눈을 감는 사람은 현재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우리 모두는 죄가 있든 없든, 젊었든 늙었든, 과거를 받아들이고 책임을 져야 한다”며 “독일인들은 꾸밈과 왜곡 없이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기억하지 않고는 화해도 있을 수 없다”고 역설했다. 이는 당시 전쟁의 책임을 소수 나치에 돌리고 일반 국민의 책임을 부정하던 독일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후 독일이 과거사를 대하는 기준이 됐다.

같은 해 8월15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일본 총리는 ‘전후 정치의 총결산’을 외치며 각료들을 이끌고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이 신사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내각 총리대신이었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 14명이 합사돼 있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을 샀다.

다시 30년 뒤. 올해 1월2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베를린에서 열린 종전 7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독일은 수백만 (유대인) 희생자에 대한 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종전 70주년이 되는 오는 8일을 앞두고는 정부 홈페이지를 통해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에 대해 우리는 주의 깊고 민감하게 대응할 책무가 있다. 역사에 종지부는 없다”며 과거를 직시하겠다는 결의를 담은 영상을 공개했다. 이 영상에서 전후 이민 세대에 대해서도 “과거를 공유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지난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반둥회의) 연설과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일본의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 표명 요구를 끝내 외면했다. 이 분위기라면 오는 8월 종전 70주년 담화(아베 담화)에 진정성 있는 사과가 담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본의 역대 내각이 모두 과거사를 부정해 온 것은 아니다. 1993년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관방장관은 담화에서 위안소 설치·운영과 위안부 모집에 정부와 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 1995년 8월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의 종전 50주년 담화에는 일본의 침략, 식민 지배, 사죄 표현이 담겼다. 이 핵심 표현들은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종전 60주년 담화에도 고스란히 포함됐다.

우상규 도쿄 특파원
그러나 2012년 12월 ‘2차 아베 내각’이 출범하면서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이 급격히 악화했다. 아베 총리는 이듬해 4월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주장한 데 이어 그해 12월에는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올해 4월에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 등에 ‘관동대학살 피해자 수는 통설이 없다’ 같은 아베 정권의 수정주의 역사관을 반영시켰다. 또 ‘패전 체제 탈피’를 부르짖으며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을 내년에 개정하겠다고 열을 올리고 있다.

똑같은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지만 현재 독일과 일본이 걷고 있는 길은 너무 다르다. 독일은 정치 지도자들이 틈날 때마다 피해국들에 사과하고 있으며, 과거사 화해를 기반으로 유럽을 이끄는 국가가 됐다. 일본은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됐지만 아직도 과거사 문제로 주변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세계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세상을 떠난 바이츠 제커 전 대통령이 만약 살아 있어서 아베 총리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하다. 그의 종전 40주년 연설에는 이런 얘기도 담겨 있었다. “과거를 바꾸거나 일어나지 않았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과거의 비인도적인 행위를 기억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새로운 비인도적인 행위에 감염될 위험에 처하기 쉽다.”

우상규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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