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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허울뿐인 공무원연금 개혁, 제대로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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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03 21:21:38 수정 : 2015-05-03 21: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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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엊그제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안을 마련했다. 합의안은 현행 1.9%인 공무원연금 지급률을 20년에 걸쳐 1.7%로 낮추고, 기여율은 5년에 걸쳐 7.0%에서 9.0%로 높이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지급률은 연금 수령액을 결정짓는 핵심 상수며, 기여율은 매달 급여에서 떼는 보험료 비율이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이고, 공무원연금 개혁에 따른 재정 절감액으로 연금 사각지대를 지원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여야는 일부 의원과 추천위원, 정부·공무원노조 대표로 이루어진 실무기구에서 마련한 이 방안을 받아들여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그러나 여야 합의안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개혁을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15개월 만에 나온 합의안이 과거 세 차례 이루어진 개편 때처럼 일부 숫자만 조정하는 방식을 답습하는 데 그쳤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용두사미 개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합의안 내용을 뜯어보면 개혁이라고 부를 수 없는 실상이 드러난다. 이번 합의안대로라면 퇴직공무원 연금은 종전과 별 차이가 없다. 1996년 임용된 공무원(9급 기준)의 경우 퇴직수당을 포함한 퇴직연금은 월 227만원에서 225만원으로 줄어든다. 2만원 줄어들 뿐이다. 기여율이 5년에 걸쳐 조금 높아지지만 국가가 보조하는 부담금도 커진다. 합의안대로라면 퇴직 공무원의 소득대체율은 58.5%에 이른다. 현행 64.5%보다 6%포인트 낮기는 하다. 하지만 국민연금과 비교하면 퇴직 공무원은 퇴직수당까지 합쳐 1.9배를 받는다. “국민연금 수준으로 낮추겠다”던 개혁 다짐은 온데간데없다.

파탄 벼랑으로 몰릴 국가재정의 절감 효과에서도 턱없이 모자란다. 여야는 합의안을 통해 2085년까지 약 309조원의 재정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현행 구조를 유지할 경우 국가부담금, 적자보전금, 퇴직수당을 합쳐 1987조원이 소요되지만 합의안대로 하면 1678조원이 든다는 것이다. 그 추계가 맞는지는 더 따져봐야 하지만 당초 여당 개혁안의 기초를 이루었던 ‘김용하 교수안’(기여율 10%, 지급률 1.65%)보다 절감 효과는 86조원이나 떨어진다. 김용하안대로라면 재정 투입액은 1592조원으로 줄어든다. 재정학자들 사이에서는 “김용하안도 모자란다”는 비판이 나왔던 터다.

이런 일이 빚어진 것은 지급률을 고작 0.2%포인트 낮추면서, 그것도 20년에 걸쳐 인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연금 개혁은 기존 공무원에게는 별 손해볼 것 없는 ‘무늬만 개혁’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기존 공무원의 연금은 최대한 그대로 둔 채 채용되지도 않은 미래 공무원의 연금을 깎으라는 합의라고 할 수 있다.

2007년 국민연금 개혁 당시 60%인 소득대체율이 40% 수준으로 일시에 깎였다. 그대로 두면 파산에 이를 것이기에 국민은 개혁안을 달게 받아들였다. 정작 나라 운명을 더 걱정해야 할 공무원 연금개혁은 그렇지가 않다. 모든 것을 아들딸 세대에 떠넘기는 구조다. 공무원연금 적자를 메우기 위해 올해에만 3조원 넘는 재정자금을 쏟아부어야 한다. 기존 구조 아래 투입되는 공무원연금 적자 보전금은 2020년 6조원, 2030년에는 15조원으로 늘어난다. 합의안대로 하더라도 단기적으로 별반 달라질 것이 없다. 특히 대부분의 부담은 아들딸 세대에게 떠넘겨진다. ‘미봉’의 공무원연금 개혁이 비난 도마에 오르는 것은 바로 이런 도덕적 해이 때문이다.

‘나라 재정을 지키기 위한 개혁’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인지 정치권에 묻게 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달 29일 공무원연금의 국민연금 연계를 두고 “반쪽, 누더기 개혁이 되어 국민의 공분을 사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절감되는 재정을 일반 국민의 공적 연금 강화에 쓰자”고 한 문재인 대표와 야당 의원의 말을 공박한 발언이다. 김 대표의 말은 사흘 만에 바뀌었다. 어제 합의안을 두고 “다소 미완의 개혁이고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어도 잘된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공무원의 고통 분담으로 이해관계자인 단체들이 동의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연금을 개혁할 수 있었다”고 말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발언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혈세를 부담해야 하는 5000만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려는 것은 아들딸 세대가 떠안을 빚을 줄여 나라 재정 파탄을 막자는 취지에서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답답했던지 국회로 달려갔다. 그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끌어올리면 2065년까지 추가로 들어가는 돈이 570조원이 넘는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무원연금 실무기구가 국민연금 명목소득 대체율 인상에 합의한 것은 월권”이라고 비난했다.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안 하느니만 못한 내용이다. 원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물타기로 누더기 공무원연금 개혁을 합리화하고자 한다면 정치가 국가재정을 파탄 내는 데 앞장서는 꼴이다. 그래도 여야가 본회의에서 합의안을 처리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것이 나라의 미래가 파탄에 이르는 것을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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