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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전천후 ‘디지털 뱅크’… 은산분리 완화가 관건

입력 : 2015-05-04 19:50:02 수정 : 2015-05-04 20: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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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인터넷 전문은행’이 금융산업 판도 바꿀까

#1 급등하는 전셋값에 숨이 막힐 것 같은 30대 중반의 직장인 B씨. 차라리 빚을 내 집을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의 주택담보대출 관련 앱을 켰다. 친절하게도 국내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한눈에 보여주고 원리금 부담이 얼마나 되는지 자동 계산해줬다. 그래도 빚을 더 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망설이던 중 시중은행 대출담당자 C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나뵙고 대출 상담해 드릴까요. 금리는 0.1%포인트 정도는 깎아드릴 수 있습니다.”

#2 택배 일을 하며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서른 살 A씨. 물건을 배달하던 중 짬을 내 스마트폰에 깔린 은행계좌 개설 앱을 켰다. 먼저 자신의 신분증 사진을 찍어 올렸다. 이어 앱이 시키는 대로 왼손으로 V자를 한 채 사진을 찍어 업로드했다. 5분 뒤 계좌 개설이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은행을 직접 찾아가지 않고도 수분 만에 계좌를 만든 것이다. 게다가 이 계좌는 전에 쓰던 것보다 이자율도 훨씬 높고 365일 24시간 전천후다.


인터넷 전문은행이 여는 새로운 세상이다. 오후 4시면 셔터를 내리는 은행은 구시대 유물이 돼버렸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와 같은 금융회사뿐 아니라 정보통신기술(ICT)기업, 유통업체 등 다양한 사업자가 인터넷 공간의 은행에 참여해 이전에 없던 다양한 금융서비스를 만들어낸다. 예산에 맞지 않는 지출이 발생하면 경고 알람을 울리고(미국 MINT 자산관리 서비스), 페이스북의 ‘좋아요’ 클릭 수에 따라 금리를 결정하는(독일 피도어은행) 파격적 서비스들도 등장한다. 은행산업의 일대 혁명이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실현됐고, 국내에도 곧 도래할 세상이다. 정부는 6월 안에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안을 확정해 발표한다. 국내에도 올해 안에 최초의 인터넷 전문은행이 등장할 전망이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정부가 금융산업의 새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려는 핀테크(Fin Tech)의 핵심이다. 이 ‘디지털 뱅크’는 다양한 핀테크 기술과 결합해 금융소비자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전망이다. 핀테크란 금융과 ICT가 융합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서비스를 일컫는다.

기대가 크지만 설립 자체만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선진국에서 성공뿐 아니라 실패 사례도 적잖다. 더욱이 한국은 이미 인터넷 뱅킹이 잘돼 있는 나라다. 이전 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고, 그래서 인터넷 뱅킹과 인터넷 전문은행의 차이점이 그저 처음 계좌를 만들 때 은행 점포를 가느냐, 안 가느냐 정도에 그친다면 성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얼마나 차별화된 서비스와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 것이냐인데, 이는 어떤 플레이어가 주력으로 참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윤수 금융위 은행과장은 4일 “기존 은행들 중심으로만 참여가 이뤄진다면 크게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며 ICT 업체들의 참여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이유로 인터넷 전문은행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은산분리’ 완화는 최대 관건이 되고 있다. 이 규정을 완화해야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인 ICT기업들이 의욕적으로 은행 설립에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 은행법(16조2항)은 ‘비금융주력자는 은행의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4%를 초과해 보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은행과 산업자본을 분리하는 은산분리 규정이다.

◆최대 쟁점, 은산분리 완화


인터넷 전문은행이 성공하려면 은산분리 완화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많다. 김미애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해외에서는 핀테크 산업과 관련된 은산분리는 거의 폐지돼 산업자본의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뿐만 아니라 금융자본의 핀테크 업체 소유까지도 허용된 상황”이라며 과감한 제도 개혁 필요성을 주장했다. 정부도 “ICT기업이 들어오게 하려면 은산분리 완화가 필요하다”(이윤수 은행과장)는 입장이다. 현재 4%인 비금융주력자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확 높여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자산 5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을 제외한 비금융주력자에 대해 최소 15%까지 인터넷 전문은행 지분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ICT기업의 참여를 강조하는 것은 이 문제가 인터넷 전문은행의 성패를 가를 중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기존 은행과는 유전자가 다른 집단이 들어와야 혁신적 사업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은산분리 완화가 기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국회에서 은행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상당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해 예외적으로 은산분리 틀을 허물면 결국 재벌의 은행소유를 허용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 여력이 있는 상당수 ICT기업들은 재벌로 불리는 기업집단에 속해 있는 터다. 재벌의 사금고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2000년 초반 시작된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 시도가 두 번이나 좌초한 것도 은산분리 등 규제 완화 관련 쟁점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금융산업 판도 바뀌나

인터넷 전문은행에 유리한 ICT기업들이 대거 참여해 혁신적 금융서비스를 쏟아내면 금융시장 전반에 변화가 일 전망이다. 조영서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는 “한국형 인터넷 전문은행은 국내 은행업의 혁신을 이루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다양한 부문의 사업자에게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전망이다. 통신사는 금융과 통신 상품의 결합판매라는 신규사업을 확보하고, 플랫폼 사업자는 플랫폼 내에서 금융서비스를 제공해 고객 충성도를 높이며, 유통업체는 은행·결제·쇼핑 간 연계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 오프라인 은행에 비해 높은 효율성도 강점이다. 지점을 둘 필요가 없으니 인건비, 임차료, 마케팅비가 절감된다.

“기대가 지나치다”는 우려의 시선도 적잖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중은행들의 인터넷 뱅킹 시스템이 워낙 잘 깔려 있는 터라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서비스를 만들지 못한다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핀테크를 활용한 핵심 서비스를 내놓지 못한다면 과거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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