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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재의천기누설] 바둑은 우주를 형상화한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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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04 20:28:47 수정 : 2015-05-04 20:2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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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깊이’를 느낄 수 있어
어린이 인성교육에도 최고
태호복희가 창안한 음양오행 우주론은 동양문화의 근본이다. 이 우주론에서는 땅으로 대표되는 음의 기운이 하늘로 대표되는 양의 기운과 상생해 우주를 구성한다. 예를 들어 남자는 하늘의 기운을, 여자는 땅의 기운을 받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남자 한복은 웃옷을 열어 하늘의 기운을 받고 바지 아래는 묶어 땅의 기운을 막는다. 여자 한복은 웃옷을 묶어 하늘의 기운을 막고 치마를 넓게 벌려 땅의 기운을 받는다. 과학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우리 조상들이 자랑스러울 뿐이다.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천문 분야에서는 달이 음의 기운을, 해는 양의 기운을 상징한다. 그래서 달은 태음, 해는 태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오늘날 해는 태양이라고 부르면서 달은 태음이라고 부르지 않아 ‘태양과 달’ 같이 어색한 표현도 보게 된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고 해야지 ‘태양과 달이 된 오누이’라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해와 달의 겉보기 크기가 같은 덕에 음과 양도 동등한 자격을 갖추게 됐다. 우리 지구가 도는 해와 우리 지구를 도는 달이 지구에서 보면 크기가 같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이는 해가 달보다 400배 큰 대신 400배 먼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조화요 신의 뜻이다.

지구에서 해가 달보다 2배쯤 더 크게 보인다고 상상해보라. 어떻게 해와 달이 동등한 자격을 갖출 수 있겠는가. 이처럼 해와 달은 인류의 생각을 지배했다. 만일 하늘에 해가 2개 떠있어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해가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졌어도 세계사의 흐름은 바뀌었을 것이다.

한 해, 두 해, … 하는 해가 바로 하늘의 해요, 한 달, 두 달, … 하는 달이 바로 하늘의 달이다. 즉 지구가 해를 한 바퀴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 해요, 달이 지구를 한 바퀴 공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한 달인 것이다. 따라서 한 해는 360일이요 한 달은 30일이 된다.

그래서 사람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각 10개씩 있는데도 1년은 10달이 아니라 12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360 나누기 30은 12 아닌가. 여기서 12, 30, 360과 같은 숫자들이 수백만 년 세월 동안 인류가 밝혀낸 ‘우주의 암호’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음양오행 우주론에서 삼라만상은 하늘과 땅, 해와 달, … 음양의 두 기운이 조화를 부려 일어난다. 바둑 또한 음양의 두 기운이 조화를 이루는 스포츠다. 바둑판은 가로세로가 똑같이 19줄이어서 총 19×19=361집을 갖게 된다. 집의 수는 중앙의 ‘천원’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모두 360이 되는데 이는 ‘우주의 암호’ 중 하나다.

동양에 장기가 있다면 서양에는 체스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양의 바둑에 해당되는 것이 서양에는 없다. 흑과 백이 어우러지는 바둑은 음양오행 이론에 기반을 둔, 우주를 형상화한 스포츠다. 나는 소설 ‘태호복희’에서 바둑을 아예 태호복희가 만든 것으로 설정했다.

나는 바둑의 정석들을 보며 어느 동양 별자리를 닮았는지 비교해 보는 버릇이 있다. 이는 경주 지역 위성사진을 보며 반월성이 달이라면 근처 고분들은 무슨 별자리 모양으로 배치됐을까 찾아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천문학자의 직업병(?)인가.

바둑은 과학과 여러 측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특히 하루아침에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이 똑같다. 밤을 꼬박 새워 준비한 하수가 자다가 일어난 상수를 결코 이길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과학도 시험공부가 통해서는 안 된다.

훌륭한 선생님은 학생들이 시험공부를 따로 할 필요가 없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내 교육관이다. 벼락공부가 먹히지 않는 출제로 정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바둑으로 말하면 어떤 정석을 얼마나 외웠나보다 사활문제를 얼마나 잘 푸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바둑은 인성교육에도 그만이다. 어린이들조차 이기고도 전혀 기쁜 내색을 하지 않는다. 점심시간 바둑에서 이겼다고 자리에서 일어나 ‘세리모니’를 하던 옛날 나의 바둑생활이 생각난다. 바둑영재들이 바둑학원을 다니거나 연구생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맛봤을까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바둑계가 잘하는 것 중 하나는 영재교육이다. 프로기사들은 영재들을 육성하는 것이 바둑계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말한다. 나는 과학계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창호 키즈’의 교육 시스템은 이미 갖춰졌지만 ‘송유근 키즈’를 위한 그것은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라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2014년 6월 24일자 칼럼을 참고하기 바란다.

바둑영재들이 오로지 이겨서 살아남는 법만 배우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한다. ‘바둑의 깊이’에 대해서도 배우면 자라서 더 훌륭한 승부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언뜻 봐도 음양의 원리, 태극의 원리, 삼족오, 태호복희의 ‘하도’, 힘의 물리학, 전자기장… 등을 공부하면 ‘승부 호흡’에 도움이 될 것 같이 생각된다.

최소한 자기가 얼마나 훌륭한 ‘신선놀음’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지 깨달아 큰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자기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박석재 한국천문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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